행동경제학과 보편적 오류
비즈니스에 관심을 둔 이후 꽤나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왔다. 식사 자리에서의 가벼운 대화부터 밤을 꼬박 새우는 열띤 토론, 바다 건너 저자와의 대화(독서)까지. 과정에서 필자 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으로 보이는) 포괄적인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문득 공유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짧은 지면을 빌어 기록해보고자 한다.
행동경제학을 통해 인간은 ‘예측 가능한 체계적 오류’를 꽤나 자주 범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비즈니스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본능에 가까운 오류이기에 알면서도 극복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선내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은 불확실성이 만연한 비즈니스란 미로에서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이 같은 오류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용한다면, 정의롭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된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왕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폭발적 성장이나 성공의 법칙 같은 주제에 대해선 논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검증된 이론과 실험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생각의 기반을 다지는 일은 분명히 괜찮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따라오는 지면에서는 행동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보편적 오류들을 제시한 뒤, 이어지는 글에서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해답을 제시할 예정이다.
장기적 비전 VS 단기적 성과
우리의 본능은 단기 성과를 선호한다.
글로벌 컨설팅 전문 회사 맥킨지가 전 세계 1,000명 이상의 이사와 최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회사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접근 방식 분기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는 강력한 단기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압력이 지난 5년 동안 증가했다고 말했으며, 79%는 단 2년 또는 그 미만의 기간 동안 강력한 재무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특히 느꼈다고 한다. 때문인지 응답자의 44%가 전략 수립에 있어서 3년 이내의 기간만을 바라본다고 했다.
놀라운 점은 응답자의 73%가 3년 이상의 기간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86%는 비즈니스 결정에 있어서 더 멀리 조망하는 것이 ‘재정적 수익을 강화하고 혁신을 높이는 등 여러 면에서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단기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전략적 의사결정 분야의 권위자, 올리비에 시보니는 자신의 저서 [선택 설계자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편향*과 손실회피 편향*을 결합하면 단기 성과주의의 행동적 기초를 이해할 수 있다. 비용-편익 분석에서는 손실이 비슷한 크기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여기에 현재와 미래 중에는 현재가 훨씬 더 큰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추가해 보라. 내일의 이익을 기대하며 오늘의 손실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반갑지 않은 제안이다.
물론 몇 가지 인지 편향에만 모든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주가, 성과주의에 대한 심화된 분석은 앞서 언급했던 [선택 설계자들]에서 접할 수 있다.
손실 회피 편향 :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은 것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하는 것.
현재 편향 : 절충 상황에서 더 큰 미래 보상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작은 현재의 보상에 안주하는 경향.
모든 계획은 불확실하다.
장기 계획은 불확실하다는 관점엔 분명한 오류가 있다. 단기 계획 또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분 뒤 미래든 일 년 뒤 미래든 그 어떤 미래도 예측할 수 없다. 예측의 관점에서는 단기 계획과 장기 계획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잠시 주변에서 접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오해를 소개하겠다(별도의 통계 자료는 없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다).
1. 이것만 하면 100% 성공한다(마케팅은 결국 ‘000’이다).
대규모 자본이건, 후킹 비법이건, 양질의 콘텐츠건 이런 류의 주장을 몇 번이나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건 없다. 거대 광고나 어그로성 헤드라인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기록할 여지가 있지만, 성공적 마케팅과는 별개의 문제다. 광고는 규모를 키워줄 뿐이며, 어그로성 헤드라인은 시선을 끌어줄 뿐이다. 지나친 환원주의는 경계대상이다.*
대규모 광고와 어그로는 성공적 마케팅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결국 일시적 현상이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Carrying capacity’ 개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단순화는 필요하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의 말처럼 “이론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2. 분석 툴을 이용해 성과를 예측할 수 있다.
그동안 만났던 마케팅 회사 영업원들은 죄다 과거의 포트폴리오를 내세우며 앞으로의 성과를 ‘장담’했다. 그때마다 나는 증시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장기간, 체계적인 방법으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차트가 미래를 보여준다는 증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관련 사례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사후 확신 편향의 결과이거나 운일 것이다.
물론 과거 캠페인 결과를 참고해 다양한 테스트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그대로 들어맞을 것이라 기대하긴 힘들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검증 과정을 장기간 거쳤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린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조차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성공적인 마케팅을 하고 싶다면 여러 테스트를 거쳐 확률이 높은 곳에 ‘베팅’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이렇다 할 성공의 법칙이 여태껏 나오지 못한 이유(혹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도 같다고 본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은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통해 성공한 기업을 연구해 경영의 교훈을 탐색하는 책들의 인기는 ‘결과 편향*’과 ‘후광 효과*’의 결과일 뿐이라며 호되게 비판한다.
운의 중요성을 안다면, 성공한 기업과 덜 성공한 기업을 비교할 때 대단히 일관되게 나타나는 반복된 유형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무작위 조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카너먼은 대표 사례로 짐 콜린스(Jim Collins)와 제리 포라스(Jerry I, Porras)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언급했다.
결과 편향 : 과거에 내린 결정을 과정이 아닌 최종 결과로 판단하는 경향
후광 효과 : 대상의 특징적인 장점 또는 단점이 눈에 띄면 그것을 그의 전부로 인식하는 오류
분명히, 과거는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살펴보았듯 우리의 본능은 단기적 성과를 선호한다. 게다가 여러 분석 툴이나 이론들은 성공적 비즈니스로 가는 왕도가 있다며 현혹한다. 하지만 성공의 예측 같은 것은 불가능하며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조망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알면서도 극복해 내기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여기까지 필자의 주장이 너무 회의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는 여러 이론들과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훌륭한 석학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에 임하는 올바른 태도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 강력한 본능에 더해진 불확실한 미래,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