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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효원 Jan 14. 2022

아래층 할머니와 나

93세 절친을 만나다.


결혼 후 4년 만에 반은 은행이 소유한(?)

집을 장만하고 새로운 집에 이사 온 지 6년째~

주변 친구들은 층간 소음 때문에

 곤욕 치른 이야기를 했다.


첫째가 4살. 둘째는 이사 와서 생겼으니,

아이 둘이 11살 7살이 된 올해

층간 소음이 문제가 7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안 믿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이들에게 안전지대였다.

이사 와서 12층이라서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 기사만 봐도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까지 이어지는 기사들을 자주 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사 떡을 들고  벨을 눌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어.

집에 안 계시나 했는데...

곧 흰머리 성성한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한 방 생활을 했던

나는 할머니가 낯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 와서요,

떡 좀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그 이후 집도 서로 오가며

살아온 인생 이야기도 듣고,

할머니와 절친 같은 사이가 되었다.

아파트를 오갈 때마다

나무 벤치에 앉아계신 할머니,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보다

아래층 할머니를 더 자주 보았다


오죽하면 할머니 하면

아랫집 할머니를 말하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어느 날은 밖에 잠깐 나갈 일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려는데


갑자기 둘째가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냥 나가기 싫다며 울고 불고 한 시간 넘는 실랑이를 하다.

그럼 혼자 있어!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짧은 시간이니 괜찮겠거니 했었다.

그 사이 아래층 할머니 집에 내려간 아이,

엄마가 집에 없다며 하소연하며 할머니 집을 찾아갔단다.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도,

가족이 곁을 떠났을 때도.

우리 집 대소사는 다 알고 계시는 할머니,


가끔은 할머니 앞에서 남편 흉도 보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내가 했었을 넋두리를

아랫집 할머니 앞에서는 다 해본다.

음식을 하면 나눠먹고,

죽을 끓이면 이가 불편하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가져다 드렸다.


그렇게 층간 소음에 미안함을 얘기하면

손사래를 치시며 아이들 뛰는 소리가

달갑다며 적적한 집보다

애들 뛰는 소리가 들리면 웃음이 나신다고

절대 혼내지 말라고 해주시는 할머니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

학교에도 못 가고 집에만 있을 때도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커서 항상 더 조심을 시키지만

어디 아래층에 울릴 층간 소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93세에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가끔씩 넘어지셔서 다치는 일도 많아지고

코로나 시국에 바깥 외출도 어려운 요즘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생선을 보니

할머니가 생각나서 가지고 내려갔더니

버선발로 나와 반기신다.


손을 잡아끌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큰딸이 할머니 드시라고

정성스레 말린 곶감을 내어주시며

연신 어서 먹으라고 하신다.


도서관에 갔다 와 집에 오니 벨이 울린다.

아랫집 할머니다

엄청 큰 양배추를 주신다


"할머니 이렇게 큰 양배추를 어찌 들고 오셨어."

"엘리베이터에 실어서 올라왔어"

사 왔는데 같이 나눠 먹자 신다. 몸도 불편하신데

일부러 올라오신 할머니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


"다음부턴 전화해 할머니!

넘어지면 안 되니까 무거운데 내가 갈게요"

며칠 전 외출하고 오는 길에

현관문 앞에서 넘어지셨는데

핸드폰도 없고 기운이 없어서

일어서지 못하셔서

4시간을 현관문 앞에서 누워계셨다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 이후로는 항상 할머니 집

문 닫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들어오곤 했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나이 많이 먹은 건  죄라고

너무 오래 사셨다고...

그래도 딸들이 있어.

위안이 되신다며 본인 돌아가실 날까지

잘 지내보자고 하신다.


"엄마한테도 잘해 없으면

그때는 아무것도 못해"

그 말에 왠지 더 울컥해졌다

90 평생 살아오시면서 모진 세월..

자식들 걱정에 가슴앓이하시고

이제 늙어서 오래 사는 건

자식들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가


나도 세월이 흘러 할머니 나이가 되면

그런 미안함이 들까? 하는 씁쓸함과

연민에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잘하라는 말이

왠지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던 건 왜일까?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보내주신 거 잘 받았어요"

"평상시에  말을 못 한 거 같아 감사하다고 전화했어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아직까지 남아있지만..

그래도 할머니 덕분에 조금이나마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딸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는 아래층 친구 집에 갔다 왔다고 했더니

 응? 친구 집? 하면서 의아해한다.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라면

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차이 많은 절친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 깨닫게 해 준다.

93세 할머니와 친구라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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