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의 시작
이혼 후, 거의 1년 만에 엄마를 만나러 가던 날,
전날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 삶을 위해 떠난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갑자기 집을 나가고 연락조차 없던
엄마가 나를 보면 죄책감에 울지 않을까?
엄마 없이 잠든 남동생을 볼 때면 눈물부터 났습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망도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어느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는 내 걱정은 말라고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지’
마음속으로 되뇌고 다짐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의 뒷모습이 보이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흘깃 보며
"왔니?"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대하는 엄마를 보니,
내가 준비했던 모든 말들이 바보같이 느껴지고
내 존재도 희미해져 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양가감정의 시작
‘버리고 갔는데
엄마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시간이 지나도 그때가 자꾸 생각나고
상처받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에
엄마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감정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엄마에게 용기 내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어.”
예전에 내가 엄마 이혼하고
1년 만에 엄마 보러 갔던 날 기억나?
나는 전날 잠도 못 자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는데
엄마는 1년 만에 만났는데
나를 보지도 않고 “왔냐?”
한마디 했었어. 엄마 그때 왜 그랬어?
처음으로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기억은 안 나는데….
지금도 엄마가 누굴 만나도
막 반갑게 인사하고 왔냐고 반기고
그런 걸 못해 엄마 성격이 원래 그래.
그나저나 집에 김치는 얼마만큼 있어?
사과는 받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말을 돌리며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얘길 한 것만으로 뭔가 후련 해졌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듭니다.
저 또한 늙어가는 엄마를 볼 때면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상처받은 나는,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차마 왜 그랬냐고 따져 묻지 못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는 결핍이 쌓이면
나에 대한 믿음조차 사라지게 되고
심리적으로 불안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끊임없이 날 괴롭히던 원인 모를 감정싸움,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안타깝지만 나의 부모가
내가 바라는 부모는 아닐 수 있다.’
<화해>라는 책에서 아픔을 털어놓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부모가 사과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비단 부모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 상처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
내 속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오직 나를 위한 노력,
내 감정을 마주하고 그대로 인정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족이라서 참고 말하지 못한 감정.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양가감정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