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개이득"도 이미 유행이 지났나요?

by 얼렁뚱땅 도덕쌤

졸업한 제자에게 몇 년만에 연락이 올 때가 있다.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만날 약속을 잡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약간 긴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제자의 추억 속 나는 실재하는 나보다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라면, 그로부터 몇 년만에 연락을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의 머릿속 사람만큼 좋은 사람이 아닌데. 괜히 만났다가 추억이 와장창, 깨지면 어쩌지. 그냥 좋은 사람으로, 미화된 추억 속 모습 그대로 남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에 아마도 나는 그와 만날 약속을 잡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자가 나를 보고싶어할 때는 언제나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 애들이 나의 첫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도 마찬가지로, 잔뜩 미화된 그 애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그 애들을 보고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제자들은 대부분, 내 추억 속에서 미화된 10대보다 훨씬 더 멋진 20대가 되어 있다. 성장기란 그런 것이겠지. 나의 미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이들은 성장한다. 쑥쑥 자라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다. 그 애들만큼 빠르게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미화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쓰는 것. 그 애들 머릿속에서 내가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실재하는 나도 그렇게 변해보자. 조금씩 계속, 달라지려고 노력하자. 아이들이 성장하듯이 나도.


10대들과 생활하는 직업은 좋은 점이 많다. 유치한 농담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고, 사소한 사건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활기찬 기운이 아이들로부터 나에게 전염된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질문을 계속 받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하루하루만 살아온 아이들이, 그러다 보면 성장이 정체되는 나이가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나이 불문 모든 인간의 성장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전제로 나와 대화할 때가 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쌤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요!" 이런 말들은 30대끼리 대화할 때는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할 리가 없다. 어떤 30대도 다른 30대에게, 네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얘기해보라고 하지 않으니까. 자기 자신에게도.


나는 나에게 잘 묻지 않는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앞으로 네가 어떤 사람이 될 것 같냐고.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퇴보하지 않기 위해서 이 질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이 좋다. 성장기의 아이들이, 나에게 자꾸 물어봐 주니까. 자기들처럼 나도 계속해서 성장할 게 당연하다고 믿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 성장은 진짜로 당연한 일이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


내가 중학생일 때,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가 커가는 걸 보면서, 나는 자라지 않는다는 걸 실감해. 그래서 괴로워. 그 선생님은 방송통신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실감이, 그 괴로움이 선생님을 공부하게 했으리라.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실감할 수 있고, 괴로울 수 있고, 그래서 성장할 수 있는 선생님.


10대에는 누구나,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성장한다. 의식적으로 성장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수단으로서 어떤 노력을 계획하지는 않더라도, 끊임없이 삶과의 투쟁을 통해서 성장해나간다. 30대는 다르다. 의식적으로 성장을 위한 투쟁을 해나가지 않으면, 투쟁 결과로 얻는 것이 정체 혹은 퇴보일 가능성이 크다. 영어 단어 Struggle을 떠올리면서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17살 때 내 친구는 Struggle의 의미 투쟁하다, 발버둥치다, 고군분투하다 등등을 이렇게 압축했다. 지랄하다. 어느 나이에 놓여있든 사람은 지랄하며 살아간다. 열심히 지랄해서 얻는 것이 퇴보라면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그 허탈한 일을 막기 위해서는 의식해야 한다. 내가 성장하기 위한 지랄을 하고 있는지 계속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쓰면 뇌전증을 비하하는 것일까? 긍정적 의미로 썼는데. 모든 이가 투쟁하며 살아간다고 쓰면 "저는 투쟁 안 하는데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친숙한 단어를 골랐다. "미쳤다"가 칭찬일 때가 있듯이 내 문장의 의도는 삶에 대한 찬사에 가깝다. 그러나... 어렵군. 애초에 요즘 10대에게는 지랄이라는 단어가 친숙하지 않은 듯도 하고. 혹시 이 단어와 관련해서 의견이 있으시면 꼭 댓글 달아주세요.)


계속 10대들 곁에 있고 싶다. 10대들과 함께 살면 10대처럼 살게 되니까. 개그코드가 유치해지고 신조어를 익힐 때쯤 이미 유행이 지나버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자기도 모르게 쑥쑥 자라는 그 애들을 보면서, 나도 쑥쑥 자라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고, 그 결과 나는 내가 알게 쑥쑥 자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 애들보다 내가 더 이득인 것 같다. 개이득.


가끔 연락만 주고받던, 졸업한 제자로부터 만나자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뒤로 약속을 잡았다. 그 애의 미화를 내가 따라잡았기를. 제자의 추억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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