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학생들은 저마다 기상천외한 질문을 했다. 우리 반의 벌칙 운영 방식을 아기에게도 적용할지 묻는 학생도 있었고(벌칙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계획한 임신인지 묻는 학생도 있었다(이 질문의 의도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기도 서울대 가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 마치 이미 결정된 무언가를 물어보는 듯한 말투로. (학생들에게는 서울대나 호그와트나 비슷하게 보이나보다. 호그와트는 부모가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해리포터를 입학시켰다.)
중학생들은 내가 서울대 졸업생인 것을 재미있어 한다. 공부법 등 이것저것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내 대답을 주의 깊게 듣지는 않는다.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보는 행위는 재미있지만 진짜로 궁금하지는 않은가 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 대답하곤 하는데, 서울대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잔소리를 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먼저 물어본 거다?
나는 뱃속의 아기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기가 가고 싶어 하면 도와는 주겠지만, 내가 먼저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수업 시간에 예의를 갖추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시험을 잘 보라거나 유명 대학에 합격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셨고,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그런 엄마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도 아기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학생일 때도 교사일 때도, 정기고사가 끝난 중학교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엄마한테 혼나겠다”이다. 중학생의 시험 점수가 엄마의 기대에 부합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셨을 텐데, 엄마는 내가 시험을 망쳤다고 말할 때마다 “제일 속상한 사람은 너겠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들은 매번 혼이 나는데 나는 한 번도 시험 점수를 이유로 혼난 적이 없다. 하지만 숙제를 하기 싫어서 학습지를 숨겨놓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했을 때는 엄청나게 혼이 났다. 웬만큼 아파도 결석은 허락해주지 않으셨고 학교의 모든 수업을 복습하라고 강조하셨다. 나도 아기에게 그렇게 하고 싶고,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교육을 하고 있다. 아기도 학생들도, 입시가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내면 좋겠다.
엄마 덕분에 나는 그런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시험이나 대학에 물론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했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입시와 무관한 과목도 고3 2학기까지 매일 복습했고, 그렇게 시간을 쓰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내 자존감을 지켜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나를 선생님들께서 응원해주셨다. 선생님들의 도움과 시기적인 운 덕분에 나는 말도 안 되게 낮은 성적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현재의 학생부 종합전형이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해였다.
길고 장황한 잔소리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최선을 다해라.'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성적보다 노력이 가치 있다, 그런 뻔한 이야기.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믿어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있다고. 그랬더니 덤으로 서울대가 딸려오더라, 라는 이상한 유혹을 끼워서라도.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하라고 말하면서 좋은 결과를 들먹이는 것은 자기모순이고, 반드시 결과가 따르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우연히 결과가 뒤따랐던 경험을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유혹적이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중학생이 시험 치기 위해 공부하고, 엄마를 위해 시험 친다.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효심은 아름답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제일 속상한 사람은 너겠지”라는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별로 속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시험을 칠 때마다 그 말씀을 들었더니 세뇌가 되었는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속상해졌다. 내 노력의 증표로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마음이 내게도 조금씩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공부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학부모님들께도 유혹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