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향기

by 얼렁뚱땅 도덕쌤

중학생 때 잠깐, 교회를 다녔다. 친구 따라 간 거였는데 거기서 들은 말 중 기억 나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하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은 인상적이었다.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인데,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기독교와 그 신에 대해 평가한다는 의미다. 나쁜 행동을 하면 ‘기독교인은 다 저래?’ 하는 식으로. 기독교 전체와 신을 욕먹이지 않기 위해서 항상 바르게 행동해라, 거칠게 표현하면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가끔 듣곤 했다.


실제로, 티나게 종교생활을 하는 중학생은 드물다. 한 반에 한두 명 정도? 어느 종교인지에 관계없이 대부분은 자신의 종교를 친구들에게 자주 드러내지 않는다. 일부러 숨기지는 않더라도 굳이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 느낌.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애초에 종교가 없는 중학생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의 친구들에게 아는 기독교인이 몇 명 없는 것도, 그리고 친구들이 그 중 하나인 나를 보고 기독교 전체에 대해 판단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에게 그것이 부담스럽고 싫은 일이더라도.


사실 부당하다고 따져볼 여지는 있다. 전 세계에 기독교 신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 하나만 보고 기독교인은 다 저런가보다 짐작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표본이 1개인 설문조사를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들이 매 순간 논리적으로 생활하고 모든 대상을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조사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내가 행실을 똑바로 하는 편이 훨씬 쉽다. 나도 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무의식 중에 편견을 가지고는 하니까. 한두 명, 한두 사례를 보고 전체에 대한 인상이 형성되는 것을 인간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듯도 하다. 현실적으로.


대학에 가서는 학생운동을 아주 조금 했다. 계기를 구구절절 말하자면 긴데, 요약하면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나중에 알고보니 사회주의자였다. 그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뭘 조금 거들게 됐다.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니고, 유기물로 된 피켓받침대 역할 정도? 우리 아빠는 친구 따라 교회도 가고 데모도 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용케 다단계는 안 했구나.” 어떻게 이렇게 귀가 얇냐는 말을 충청도 화법으로 하신 것 같다. 경상도 사람이면서.


그러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내가 마르크스의 향기가 되어 있었다. 당시 서울대에는 사회주의자가 기독교인보다 훨씬 적었고, 시험범위에 마르크스가 있으면 친구들이 나에게 답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이 알고 지내는 사회주의자가 나뿐이었을 것이다.(이제는 한 명도 없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어서 전향했으니까. 정치적 중립,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신중하게 대답하곤 했는데, 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에게 사회주의 전체에 대한 인상을 심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중한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던 중 우울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일정을 기억하지 못했고 기억하더라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현재 상황을 연결하지도 못했다. 조별모임에 툭하면 빠졌고, 참석하더라도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다가 왔다는 뜻이다. 무엇을 주제로 하든 '신중하게 말하기'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의 향기, 아니 악취가 되었다. 10년 안에 무언가의 향기를 3개나 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진짜 마이너한 인생이다.


동기들도 선후배도,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이유는 내가 굳이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말했기 때문이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과가 나에게 안전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윤리교육과에 속해 있었다. 윤리교육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원래 갖고 있는 성품인지 아니면 윤리교육을 배우면서 지니게 된 성품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윤리교육과에는 우울증을 이유로 나를 차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우리 과 사람들이 나를 차별하거나 기피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오히려 배려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우울증을 공개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고 내 믿음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나는 모든 친구와 선후배, 그리고 교수님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무사히 졸업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내가 우울증을 가졌기 때문에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울증이 내 삶의 장애물이라는 식의, 우울증이 무능력의 원인이라는 식의 말을. 그 말을 처음 내게 한 사람은, 나의 첫 직장 관리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 공부를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미인가 대안학교에 교사로 취직했고, 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3달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일을 잘 못하기도 하고, 일이야 가르치면 차차 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게도 없고 깊이도 없어서” 같이 일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우리나라에서는 회사에 심각한 해를 끼친 게 아니면 정규직을 해고할 수 없고, 서면 통지가 없으면 부당해고라고 했다. 서면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학교로부터 답변서가 왔다. 우울증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언제 자살할지 모르는 사람을 교사로 쓸 수 없다고.


해고 사유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제쳐놓고, 서면 통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부당해고로 판정받았다. 복직이 원칙이지만 이 난리를 쳐놓고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일할 자신이 없어서 법에 적힌 절차대로 3개월치 월급을 받고 끝냈다. 노무사인 친구가 말했다. 서면이 없으면 빼박이야. 답변서가 아무리 구구절절 길어도 서면이 없으면 게임 끝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짜 궁금한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우울증이 타당한 해고 사유인지를. 내가, 해고되어 마땅한 사람인지를.


그리고 다음 직장, 또 다음 직장이 있었다. 직장에서 나는 3가지 향기를 모두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요약하면 (1) 소수자 집단에 속해 있고 (2) 그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 -> 자동으로 그 집단의 향기가 되는 것인데, 앞의 2가지 향기는 집단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이제 자격이 없었고 뒤의 1가지 향기는 그 사실을 숨기기만 하면 그만둘 수 있었다. 쉬운데?


그리고 올해 초, 어떤 교사가 학생을 죽였다. 뉴스에서는 그 사람에게 우울증이 있었다고 했고 그 사람은 단번에 전국민에게 우울증의 향기가 되었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남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의 우울증과 나의 우울증은 양상이 다른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뉴스와 댓글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첫 직장의 답변서도 계속 떠올랐다. 우울증이 있으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는 말. 그 말을 스스로도 반박할 수 없었다. 좋은 교사가 될 자신이, 없었다.


몇 달 뒤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면 우울증 약을 웬만해선 먹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태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은 산모와 아이의 목숨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처방해준다고 한다. 우울증의 경우는 자살충동이 너무 심하면 약을 처방할 수도 있는데, 나는 지금 죽고싶은 정도는 아니라서 약 복용을 멈추었다. 근데 우울증 약은 이렇게 갑자기 중단하면 위험하다. 원래는 의사의 지도 아래 서서히 줄여야 하고, 많이 먹다가 갑자기 끊으면 우울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전보다 자주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가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병휴직을 냈다. 갑자기 약을 끊어서 우울증이 심해질까봐 무서웠고, 그랬다가 약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 즉 산모와 아이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도 무서웠고,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를 하려면 휴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의사 선생님도 동의하셨다.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우울증이 심해지면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학생을 죽이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약도 못 먹는 상황에서 대학생 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일도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정 휴직이 하고 싶으면 다른 휴직을 쓰라는 조언도 했다. 병휴직을 쓸 때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니, 병명이 꼬리표가 되어 나를 따라다닐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내 행동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나를 판단할 거라고, 내가 학생을 살해할 가능성을 고려할 거라고, 사람이 살다보면 갈등이나 실수가 없을 수 없는데 그때마다 우울증이 내 약점이 될 거라고 했다. 저 사람이 우울증이 있어서 문제를 일으킨 거겠지, 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이제부터 우울증이 나의 향기인 셈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병명을 비밀로 해달라고 교장 교감 선생님께 부탁드리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병명을 물어보면 산부인과에서 진단서를 떼 줬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행정실에 진단서를 제출하긴 하지만 누구나 첨부파일을 열어보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행정적인 기록이 남는데 언제까지고 비밀이 유지되진 않을거라고 사람들은 걱정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그래서 문득, 다시 우울증의 향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까.


우울증은 유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100%는 아니지만 영향을 끼치기는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임신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유전병을 가진 모든 사람의 재생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게 내 인생이고 내 아이일 때는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니까. 예전에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자식이 나에게 엄마는 나를 왜 낳았냐고 물어봤을 때 대답할 말을 못 찾았어. 그래서 아이는 안 낳고 싶어.” 그랬더니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냐는 질문은 사춘기 때나 잠깐 하는 거잖아.” 서른이 넘도록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의 그 대답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의 삶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그렇게나 다르다는 것. 내 자식의 삶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그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


나의 우울증을 처음 고백했을 때 아빠의 첫 마디를 기억한다. “아빠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니!” 아빠가 못 해준 게 없는데 내가 왜 우울증에 걸리냐는 한탄이었다. 나의 자식이 나에게 우울증을 고백한다면 나는 아빠처럼 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아마 “엄마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많아서 미안해”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작년에 나는 임신을 결심했다. 왜냐하면, 우울증 이전의 나보다 우울증 이후의 나를 내가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류의 말을 싫어한다. 굳이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땅을 굳혀야 할까? 그냥 비 안 맞고 물렁물렁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시련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 항상 사실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능하다면 발전도 포기하고 시련도 거절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우울증 때문에 변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우울증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과 할 수 있게 된 것들이 나는 퍽 소중하다. 그래서 만약 시간을 되돌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우울증을 없애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일반론은 여전히 싫어하지만, 내 인생에 내렸던 그 비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나는 아마 완벽한 엄마는 아닐 것이고 아이에게 우울증을 물려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나를 왜 낳았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생겼으니까. 엄마도 아직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너에게 알려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네가 삶을 경험해보길 바랐다고. 네 땅은 비 온 뒤에 굳지 않을 수도 있고 네가 발전과 시련을 동시에 피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비 온 뒤의 네 모습이 네 마음에 들 수도 있다고. 삶이란 건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살아보고 나서 좋았는지 싫었는지 얘기해보자고. 겪어봐야만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삶이 아름다운 거니까, 좋았든 싫었든 너의 삶은 아름답다고. 아이가 이 말에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나의 우울증을 물려받아도, 물려받지 않아도 아이의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누구의 삶에나 비는 오고, 아이가 그 비를 달갑게 받아들이든 원망하든 그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 하지만 우울증은 물려줘도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우울증 환자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세상만큼은, 정말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교사를 희망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우울증이 해고 사유가 되고 약점이 되고 그래서 휴직을 할 때 주변에 거짓말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숨겨야 하는 세상에서.


아마 물려줄 수밖에 없겠지. 세상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엄마로서 발버둥은 쳐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나의 증거가 되는 일뿐이다. 우울증 환자도 잘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나는 지금도 우울증을 가지고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지, 내가 좋은 교사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 내가 직접 좋은 교사가 되어,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주변 사람들도 우울증 전체를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우울증의 악취가 아니라 향기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내 아이의 향기일지도 모르니까.


장애에 대해 공부할 때,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장애의 효용과 쓸모를 따지는 접근법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자폐인이 뛰어난 기억력으로 재판에서 구체적인 증언을 하는 영화 ‘증인’이 장애인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시도인데, 그런 시도 자체가 별로 인권적이지는 않다고. 인간의 가치는 사회에의 쓸모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우울증은 장애가 아니라 병이지만 이 이야기는 우울증에도 해당되지 않을까. 나는 우울증 이후에 학생 상담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내 우울증이 타인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약을 먹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잘해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내 모습을 좋아할 수 있고, 그런 식으로 내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그런 삶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어떤 면에선 좋은 교사일 것이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을 좋아한다. 일부만 인용해본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그런 삶도 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그런 인생도 있다. 우울증의 향기가 되어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keyword
이전 12화바른 말과 바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