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남학생들 사이에 희한한 유행이 돈 적이 있다. 다른 남학생의 부모님의 대한 정보를 교사에게 말하는 놀이. 형식적 청자는 교사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친구를 향한 장난이면서 일종의 놀림이기도 했는데, 괴롭힘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그냥 두었다. 예를 들면 "선생님, A네 아버지 성함은 ㅇㅇㅇ이에요." 이렇게 알려주는 식이었는데 그 정보는 대체로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는데 B가 말했다. "선생님, C네 아버지 대머리예요." 그랬더니 C가 반격했다. "선생님, B네 아버지 바람피웠어요." 지금까지와는 달리 심각한 정보가 오갔으므로 대화를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황급히, 하지만 무심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 "우리 아빠도 대머리니까 조용히 해."
몇 년 뒤, 수업 중에 한 남학생이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왜 결혼 안 해요?" 그 정도는 물어도 될 만큼 친한 학생이었고,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날 수업과 전혀 무관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 주제의 대화는 끝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도 쿨한 척, 한 마디 툭. "안 하는 거 아니고 못 하는 거니까 조용히 해."
남학생들에 대한 지도력을 획득하는 하나의 방법은 그들보다 더 자극적이고 웃긴 말을 하는 것이다. 교사로서 근엄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나는 이미 그들보다 키도 한참 작고 몸무게도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성이기 때문에 무서운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인기 있는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웃길수록 나는 인기 있는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웃기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지는 않는다. "우리 아빠도 대머리"는 대머리가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 아무에게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차마 '교사의 아버지'를 대머리라고 놀리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일동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아이들은 무언가 배웠으리라. 무의식 속에서라도, 대머리라고 놀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친구의 아빠도? 그런 걸 느끼길 바랐다. "안 하는 거 아니고 못 하는 거"는 누군가에게는 그 질문이 실례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고른 표현이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묻지 말아야 할 때도 있으니, 상황과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고.
한계를 만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D가 외쳤다. "선생님, E가 제 중요 부위 만졌어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F가 말했다. "게이야?" 나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설명 대신 이런 말을 했다. "중요 부위를 만지는 거랑 게이인 거는 상관이 없지. 남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타인의 중요 부위를 허락없이 만지지는 않아. 남의 중요 부위를 함부로 만지는 사람은 게이가 아니라 변태지. 나도 남성을 좋아하지만 아무 남성의 중요 부위나 만지지는 않아." 변태라는 단어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진지한 설교보다 웃긴 농담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때가 있다. "게이야?"가 "변태야?"로 전환되는 교실을 확인하면서 (이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성소수자 비하는 멈췄으므로) 의기양양해진 나는 회심의 일격을 덧붙였다. "우리 남편 중요 부위만 만지지." 성별에 관한 성적 지향 자체는 성폭력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를 웃기게 표현해보았다.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이든 남성을 좋아하는 남성이든 동일하게, 중요한 건 합의라는 의미를 담아서. 이만하면 충분히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겨우 이 정도로 남학생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남학생들은 신이 나서 더 자극적이고 더 성적인 말들을 쏟아냈고 나는 앞으로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남학생들을 이겨 먹으려 들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애초에 남녀불문, 30대 늙은이가 14살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에 바탕을 둔 몰입)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는데.
출산 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냈다. 나는 점점 나이를 먹는다. 유머, 재미, 개그는 굉장히 섬세한 것이어서 세대가 달라질수록 따라가기 어렵다. 농담으로 지도력을 획득하는 일은 젊은 교사일수록 유리하다. 내 개그는 점점 더 많은 한계를 만나게 되리라. 젊은 교사는 세대 차이가 적다는 강점이 있고, 나이 많은 교사는 경험을 통해 쌓은 노련함이라는 강점이 있다. 안 그래도 교직을 늦게 시작한 나는 세대 차이도 큰데 노련하지도 않은 교사가 되어 가고 있다. 나이는 계속 많아지는데 경험은 멈추어 있다.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