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는 없지만 믿고 있는 가설 하나가 있다. 바로 초보운전은 큰 사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 무슨 말이냐면, 초보운전자는 겁을 내기 때문에 천천히 달리고, 낮은 속도로 달리는 만큼 어딘가를 들이받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큰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10년, 2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고를 내는 빈도는 초보운전자보다 훨씬 낮겠지만, 어쩌다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심각성은 훨씬 높지 않을까. 요약하면, 초보운전자는 사고 확률이 높은 대신 크게 다치지 않고, 베테랑 운전자는 사고 확률은 낮지만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런 얘기다. 통계자료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주변 운전자들에게 물어봐도 그럴듯하다는 답이 들려오는 걸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담임으로서의 첫 주가 지나갔다. 월요일에 입학한 아이들과 금요일까지 고작 5일을 보냈을 뿐인데, 기억나는 사건 사고는 5개가 넘는다. 중학교 담임이란 원래 이런 걸까? 등교 첫날 아이들에게 너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는데, 5일 내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제출한 증명사진을 잃어버렸다고 호들갑을 떨며 온 학교를 다 뒤졌는데,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오니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지를 않나. 양면인쇄 해야 하는 학습지를 단면인쇄 하는 바람에 전부 다시 뽑지를 않나. 아무튼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면서 아이들 앞에선 사고 치지 말라고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한 주였다.
그러다 문득 초보운전 생각이 났다. 나는 지금 초보운전자나 다름없구나. 여기를 들이받고 저기를 들이받아 차체가 이리저리 찌그러졌지만, 그래도 나는 조심조심 달리는 중이지. 아마도 큰 사고는 내지 않을 거야. 이것이 초보의 기술이다. 조심하기.
‘조심하기’라는 기술에는 여러 세부 기술이 들어있다. 전부 나열하긴 어렵지만 초보운전자의 경우에는 천천히 달리기, 핸드폰 보지 않기 등이 해당하고 초보 교사는 곱씹기, 질문하기, 잘못을 인정하기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퇴근해서도 내내 생각하고, 동료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거나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내 실수가 있었을 때 빠르게 사과하고. 내 교육 방식에 확신이 없는 것은 분명 단점이지만, 그 단점 덕분에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이다. 초보 교사가 아이들의 관심과 호감을 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고,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젊음이겠지만, 그래도 ‘조심하기’라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3번째 이유 정도는 되지 않을까? 누구든 나를 오래 생각해 주고, 내게 뭔가를 물어봐 주고, 내가 뭔가를 기분 나빠했을 때 바로 사과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사실 ‘조심하기’는 초보 교사와 베테랑 교사 모두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에는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이 쌓이면 여러 상황에 훨씬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작년의 경험에 기초한 판단이 올해도 항상 옳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베테랑 교사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지 않을까? 비슷한 성향의 아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을 뿐,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상황 앞에 놓이니까.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나는 교사일 텐데, 그때도 초보의 마음으로 초보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초보의 기술은 진짜 초보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보유할 수 있다. 관건은, 내가 초보라고 생각하는 것. 아무리 초보 교사여도 자신이 초보라는 자각이 없으면 ‘조심하기’를 보유할 수 없고, 베테랑 교사가 되더라도 나는 매년 비슷하지만 새로운 상황을 만난다는 자각이 있으면 초보의 기술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고등학생 때 윤리 선생님을 참 좋아했지만, 그 선생님께 불만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내 질문을 오해한다는 것. “윤리 선생님 좀 그만 괴롭혀”라는 농담을 담임 선생님께 들을 정도로 교무실에 찾아가 질문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엉뚱한 대답을 해주시곤 했다. 나는 교과서에 없는 것을 질문하는(즉, 시험에 안 나오는 것을 질문하는) 이상한 애였는데, 선생님은 자꾸만 교과서에 있는 것을 알려주셨다. 내 윤리 선생님은 베테랑 교사셨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이 질문하는 것을 나도 질문할 거라고 넘겨짚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수업을 듣고 추가로 궁금한 게 생겨서 A를 질문하면 선생님은 오늘 수업하셨던 내용 중 B를 다시 설명해 주시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아니요, 제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하고, 그제야 선생님께서 A를 알려주시는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시간이 흘러 윤리 선생님이 된 나는 학생들이 어떤 기상천외한 질문을 할지 모르니 꼭 주의 깊게 듣자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것 또한 초보의 기술일 것이다.
학생들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도 매년 비슷할 뿐이지 모두 다른 상황이다. 그러므로 작년에는 올바른 대처였던 것이 올해는 아닐 수 있다. 더 생각하고, 더 듣고, 실수가 있었으면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잊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