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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렁뚱땅 도덕쌤 Mar 17. 2024

사고와 협박의 고리 끊기

  우리 반에는 장애 학생이 있다. 학교에서는 주로 특수 학생, 혹은 도움반 학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장애’라는 단어를 기피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이고 편견인 것 같아 가장 일반적인 용어를 써 본다. 장애 학생.


  아이가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발달장애에 속하는 듯하다, 정도. 도움반 선생님께서 아이의 특징들이나 내가 유의해야할 점들을 설명해주시기는 하셨지만 어떤 분류에 속하는 장애인지는 들은 바가 없다. 명칭이나 분류가 중요한 것도 아닌 듯해 따로 여쭤보지는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이 아이 한 명의 특성이지, 장애에 대한 일반적 지식이 아니니까.


  아이는 조용하기보다 산만한 편이고, 우리 반에 속한 비장애 학생들 중 몇은 이 아이의 반응을 재미있어한다. 아이가 먼저 비장애 학생에게 장난을 걸 때도 있고 비장애 학생이 먼저 아이에게 장난을 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은 복잡해진다.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괴롭힘이라고 봐야 할지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봐야 할지 모호한 장난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장애 학생도 전혀 주눅들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함께 장난을 치는데, 이것도 막아야 하나? 고민 끝에 내 결론은 항상 ‘하지 마’의 손을 든다. 이유는,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겁을 주는 것이다. 도덕이나 배려를 말하는 것보다 너의 이익이 침해당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길이 가장 빠르다. 너는 장난이겠지, 나도 알아. 00이도 같이 장난쳤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같이 장난치다가 00이가 다치면 네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적힐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두 주를 사고 없이 버텨 왔다. 하지만.


  내가 통합교육에 찬성하는 이유는 통합교육이 비장애학생들에게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장애학생을 위해서 나는 통합교육에 찬성한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장애 학생과 1년을 함께 보내는 경험이 비장애 학생들에게 그런 태도를 길러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나는 지금 학생들에게 그런 태도를 길러주고 있나? 내가 그것을 가르치고 있나? 아니었다. 가르치지 않으면서 배우기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임용고사를 공부하는 동안은 교사가 되면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 배려하고 배려받는 방법, 존중하고 존중받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에 놓였다. 그런데도 당장의 사고를 막는 데만 급급해 애들한테 협박이나 하고 있었구나. 갑자기 허탈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달라서.


  그럼 00이랑 장난치다가 저희가 다치면요? 글쎄 그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난 것은 애초에 내가 처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을 그렇게 길렀다. 고작 두 주 만에, 아이들은 장난치다 한쪽이 다치면 누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묻는 사람으로 자랐다. 나 때문에.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내일 당장 아이들이 또 장난을 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게 옳을까? 어떻게 해야 교육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사고 발생을 차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 아직은 막막하지만, 어쩌면 이게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보자. 방법을 찾을 때까지, 계속 변하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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