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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렁뚱땅 도덕쌤 Apr 21. 2024

연락을 받지 않는 건 너희를 사랑해서야

기간제 교사를 할 때는 하루가 온통 학교로 가득했다. 출근해서도 학교 생각, 퇴근해서도 학교 생각. 눈을 떠도 학교 생각, 자려고 누워서도 학교 생각. 학교에서 뭔가 일이 있을 때 꿈속에서도 그 고민을 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 눈이 번쩍 뜨이는 일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벌떡 일어나 핸드폰에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곤 했다. 오밤중에 어떻게 갑자기 잠이 깼는지 신기해하면서.


그때는 학교용 핸드폰을 따로 구입하는 일을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학교가 내 삶이고, 내 생활이었으니까. 사생활과 업무의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교사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의 구성요소는 학교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가 싫어진 것이다. 교무실에 잠시도 앉아 있기 싫을 정도로.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그게 5월이었고, 7월에 학교를 떠났다.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를 떠난 뒤 계속 생각했다. 왜 나는 교사를 그만뒀을까? 작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학교가 싫어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어느 날은 공짜로 받은 선물 같았고 어느 날은 내가 이뤄낸 성취 같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보물을 내팽개칠 만한 계기가 나에겐 없었다. 그런데도 사직서를 낸 나를 나조차 이해할 수 없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체 왜였을까? 1년도 더 고민한 끝에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내가 학생들을 너무 좋아해서, 였다. 너무 좋아해서, 내 하루에 학교밖에 없어서, 내 관심사가 학생들뿐이어서. 그래서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고 기대했다 실망했다 기뻤다 좌절했다 롤러코스터를 탔던 게 아닐까. 나에게 학교뿐이어서. 학교 밖에 세상이 없어서.


지금은 작은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자가 아니라 운영자여서 신경쓸 것이 많다. 책임감도 느껴지고, 주도적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재미있다. 헬스장에서 PT도 받고 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1년 동안 8kg이 늘었는데, 그걸 다시 감량하는 게 목표다.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개인 운동을 게을리하기도 해서 체중 변화는 더디지만, 아무튼 목표를 갖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뿌듯함이 있다. 무엇보다, 학교용 핸드폰을 따로 사용한다.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가방에 넣어놓고 잘 확인하지 않는다. 전화가 오면 받는 정도? 이렇게 퇴근 후에는 학교 생각을 차단하고 다른 일들로 일상을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실망과 좌절이 많이 줄었다. 학교 외에도 사랑하는 일들을 만들고, 다른 고민과 다른 목표를 만들고, 학교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 관심을 분산시키면서.


내 모든 정신이 학교에 쏠려 있을 때는, 학교에서 작은 실수만 해도 나라는 사람이 실패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보잘것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교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도 퇴근하면 헬스장을 가거나 독서모임을 준비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다. 학교용 핸드폰은 보지 않는다. 학교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기간제 교사를 할 때는 꿈에도 학교와 학생들이 나왔는데, 3월부터 지금까지 학교 꿈을 꾼 날은 한 손에 꼽는다.


그럼 나는 전보다 학교에 소홀해진 걸까? 학생들을 덜 사랑하게 된 걸까? 3월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무슨 직업을 갖든 워커홀릭 커리어우먼이 되는 게 꿈이었고 퇴근보다 출근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저녁보다 아침을 기다리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렇지 않은 주위 어른들을 시시하다 생각했다. 나는 지금 시시한 어른이 된 걸까? 기간제교사 첫 해, 그러다 소진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살면서 한 번은 소진될 만큼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 내가 좋았다. 밴드 넬의 노래 ‘청춘연가’는 ‘부서질 정도로 하는 게 사랑이고 굳이 그걸 겁내진 않았던 것 같아’라는 가사로 끝난다. 나는 그때 청춘이었고, 학생들을 부서질 정도로 사랑해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부서질까봐 겁을 내는 어른이 된 걸까? 원래 부서질 정도로 하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


아니, 아니다.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던 2022년, 부서지는 과정은 나에게도 좋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소진된 나는 수업 준비를 게을리하고, 학생들을 돌보지 못했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알 수 있었던 일들을 놓쳤고, 그건 학생들에게 상처로 돌아갔다. 매달 2개의 핸드폰 요금을 지불하는 데에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하루를 쪼개 학교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든 것은, 지금 학생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학생들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서질 만큼 달렸던, 온 힘을 쏟아 학교에만 매달렸던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보다 더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쉼 없이 요령 없이 하나에만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붓던 나는 젊고 아름다웠다. 나를 태우는 딱 그만큼 빛이 났다. 다만.


이런 나도 좋아해 보기로 한다. 요령을 부리지만 현명한, 눈앞의 일에 몰입하진 않지만 멀리 보는, 조금 더 나이 들고 앞으로 더 나이들 나를. 앞으로를 대비하고 체력을 비축하는 내가 낯설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내가 더 익숙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나도 사랑해보자. 학생들을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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