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싫어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중년 여성분이셨는데 항상 웃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진심인 것 같지가 않았다. 억지로 웃는 것 같은 느낌, 항상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은 느낌,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 느낌뿐이고 증거는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확신했다. 나처럼 느낀 친구가 또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는 확신한다. 애들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챈다고.
그럼 나는?
나를 돌아본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선생님 T죠?” MBTI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T인 것 같다는 말은 절대로 칭찬이 아니라는 걸. 상대방이 차가울 때, 냉정할 때, 공감을 못 할 때 사람들은 T냐고 물으니까. 아이들이 옆에 와서 재잘재잘 얘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대부분 건성으로 대답한다. 서너 명이 동시에 말하기 때문에, 들어주고 있으면 끝도 없기 때문에, 서둘러 안내 사항을 말하고 조종례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등등 이유를 대려면 댈 수 있지만 사실 변명이 아닐까? 아이들은 나를 보며 생각하지 않을까? 저 사람은 항상 짜증이 나 있다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런데도 칭찬을 하는 날보다 혼을 내는 날이 더 많다. 칭찬은 잊어버리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잘못은 꼭 지적해야 하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합격도 하기 전부터 학급 운영 프로젝트를 줄줄이 계획해 놓았는데 결국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공지를 전달하고, 싸운 아이들을 화해시키고,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나면 학급 시간이 끝나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변명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항상 짜증이 나 있나? 그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건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내 행동은, 짜증이 난 사람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우리를 싫어해. 저 사람은 항상 화가 나 있어. 저 사람이 웃는 건 다 가식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다.
다짐을 해본다. 내일부터는 더 귀 기울여 들어야지. 가식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억지로라도 더 웃어줘야지. 그리고 내 마음을 표현해야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행동뿐만 아니라 말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