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니, 차지도않았다.
어느덧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2024년 11월부터 올리기 시작하였으니, 온전히 일년이 지났다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올해 5월 즈음 하나의 게시물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이후, 조낳괴 처럼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또 한 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약 70여 개의 글이 브런치스토리에 쌓였다. 그리고 나는 9월부터 새로운 환경으로 이직했다. 실생활의 적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 새로운 글을 쓰지도 못했고, 글을 쓰기 위해 내게 채워 넣어야 하는 독서도 전혀 하지 않았다.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날아간다더니, 어린이보호구역은 못 지나갈 속도로 3개월이 지나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앞으로의 다짐은 늘 내일, 내년보다는 오늘, 지금부터가 맞기에 본격적인 글쓰기 재개에 앞서 내 다짐과 그간의 슬픔을 먼저 써보고자 한다. 표현하지 못한 슬픔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옅을 뿐 똑같지 않았을까.
나는 비어있어야 채워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상이 꽉 차버린다면 흔히들 창의성- 이라고 부르는 새로움이 샘솟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일정이 차버렸는데 테트리스 하듯이 잘 배치해서 여유 시간을 만들어 내봐야, 그 사이에 창의적인 것을 꽂아 넣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힘든 와중에도 쥐어짜내듯이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번뜩이는 유레카- 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까지 한갓진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비어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해낼 수 없다.
내게 창의적인 행동이란 지금처럼 글을 쓰는 행동이다. 그래서 최근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한 글자도 이곳에 남기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각을 뒤엎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한 일상에 여유가 찾아올 때까지 자발적인 절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상의 속도를 오히려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참을 내가 놓여있는 환경을 탓하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관했다. 배에 메탄가스가 가득 차서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버린 소를 보며, 나와 같다고 자위했다. 대동물 수의사 같은 누군가가 다가와서 내 배에 가스배출기를 꽂아주길 바랐다. 그 와중에도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발버둥 치는 내게 '좀만 있으면 더 좋아질꺼야'라고 말하는 스윗함을 상상했다.
그러나 누가 대신 해결해 주는 상황은 기어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쓰지 않으니 머릿속에 가득 쌓여나가던 생각들이 빠져나가질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득 차버린 창고처럼 새로운 것을 넣을 여유가 없어지다 보니, 채울 생각을 안 하게 된 것이다.
나만의 생각을 채우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나름의 고통을 쥐여준다. 평소에 대중교통 등으로 이동하며 확보되는 온전한 내 개인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특히 빠르게 휘발되는 쇼츠 영상과 연예계 특이사항, 세계 어딘가의 나랑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건사고에 몰두했다. 이렇게 쓸데없는 정보들의 수집에 몰두하다 보면 한 시간 반정도는 금세 삭제되어 버린다.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고 시간은 글자 그대로 '삭제' 되어버린다. 아니지, 오히려 뇌신경 속을 생채기 내며 조금 더 집중력이 떨어진 사람으로 남게 되는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데, 나라도 구해야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달리, 좀 더 움직여보고자 한다. 이미 가득 차 보이는 시간을 이리 밀고 저리 당겨서 가운데 시간을 기어코 만들어야겠다. 그다음에 마치 투잡을 뛰는 사람의 심정으로 기계적으로 시간을 할애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생각한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한량했던 시기에 생각하는 방식처럼 나를 속여내본다.
일상의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하고, 바쁘게 지나가는 와중에도 주변을 돌아보며 글쓰기 거리를 찾아 나서본다. 직접 운전하며 돌아오는 꽉 막힌 도로 속에서도 하루의 생경한 이벤트들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오늘처럼 글쓰기를 행해본다. 내가 쓴 글인데도, 다시 읽을때마다 감탄하며 웃게 된다. 스탠딩코미디 쇼에 내가 올라가 뱉은 회심의 드립을, 내가 제일 크게 웃는 꼴이긴 하다. 그래도 이렇게 써보고 쏟아내 보니 오랜만에 명확하게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창의적인 표현 방식은 역시 이것이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한 달 뒤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 곧 거창한 신년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그렇지만 2026년에는 '브런치에 글 꾸준히 쓰기'가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중인 습관이 되도록 오늘부터 이렇게 글을 다시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