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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속성 - 후기

남기지 않는 삶에 대하여

by 비읍비읍

어떤 책 리스트 5권을 읽으면 부자가 된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혹해서 5권 중 2권을 구매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 『부의 속성』이다. 이 책을 읽는 중,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그런데 친구는 “근데 이런 내용, 지금의 한국에서 통하는 내용이 맞나?” 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화는 금세 씁쓸한 현실 이야기로 이어졌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질문을 놓지 못했다.


이 책은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쓰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쓰지 않으면 남는것이다!
부라는 것은 쓰지 않고 모아놓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소비를 적당히 줄여라!
소비를 자극하는 감정적인 부분 아니면 또 다른 부분을 경계해라!


이렇게 소비를 줄이고, 감정이 개입된 지출을 경계하며, 미래의 ‘부’를 축적하라는 조언이 책 전반을 이끈다. 부란 곧 ‘아직 쓰지 않은 것’이라는 셈이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내가 사는 현실에서는 그 말이 자꾸만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었다.




부자 마인드셋? 그런데 누구의 현실인가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돈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돈을 '흘러들어오게' 만들고, 자신은 그 흐름 위에서 설계자로서 군림하라는 것이다. 수입원을 하나만 두지 말고 여러 개의 소득 파이프라인을 만들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게 가능한 사람이 과연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는가, 라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게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도 맞지 않은가?


특히 지금의 한국에서는 이게 여전히 통용되는 말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가장 근본적인 의식주 부분이라도 적당한 수준이어야 '부'를 축적할 수 있을 텐데 집값에서 이미 넘사벽이라고 느끼고 있지 않나 싶다. 아파트 한 채 값은 수도권 기준으로 10억을 넘어섰고, 청년 1인 가구가 월세로 감당해야 할 보증금은 천만 원 / 월세는 70만 원 이상이 일상이 되었다. 회사 구내식당이 있지 않으면 점심값은 1만원에서 1.5만원은 지출해야 적당한 식사를 할 수가 있다. 심지어 카페에서 사 마시는 커피가 사치가 아니라 단순히 '작업 공간 이용료'가 되어버린 지금, 물가와 주거비는 상상할 수 없이 앞질러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약하고 소비하지 않는 태도'만으로 자산을 모으라는 말은, 결국 특정 계층에게만 유효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더 많은 파이프라인을 만들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심지어 투잡이 눈치 보이는 사회다. 또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어도 퇴근 후 남은 시간엔 출근을 준비하느라 겨우 숨만 돌릴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시간을 '낭비하거나 소비'되지 않고 '투자되거나 레버리지'된 시간으로 사용하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퇴근이 곧 끝이 되어선 안 되지 않은가? 정시 퇴근을 하자마자 머릿속에서 회사 일을 지워버리고 '이제 내 시간'이라고 선 긋는 사람은, 그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역할만 소화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엔 모순이 된다. 부를 만들기 위해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정작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달성하기 어려운 패러독스 속에 빠진다.


결국 '부자 마인드셋'이라는 말은, 일종의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망, 여유 시간, 시도해도 괜찮을 자본과 용기. 그런데 그건 이미 누군가에겐 주어져 있고, 또 누군가에겐 아직도 손이 닿지 않는다. 롭 무어의 말처럼 자산 흐름을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실행할 여백이 없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며 나와 아내에게 "적게 쓰는 것이 네가 원하는 '부자'가 되는 길이야."라고 닦달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인생의 맞는 방향인 걸까?



절제는 미덕일까, 생존 전략일까


소비를 줄이라는 말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감정적인 소비, 과시적 소비, 충동적 소비를 경계하라고 한다. 특히 롭 무어는 "부유한 사람은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며, 감정이 통제된 소비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말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의 메시지에 닿는다.

절제는 곧 미덕이다.


하지만 모든 절제가 같은 무게로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절제란 선택이고 자기관리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는 '배달 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 한겨울에도 전기장판만 켜는 것'이 절제인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사할 때 가구를 새로 사는 대신, 10년 넘은 책장을 그대로 들고 옮긴다. 그건 절약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인 것이다.


롭 무어가 말하는 '미래를 위한 소비 보류'는, 그 보류 이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감정을 통제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통제하려면 삶 전체에 일정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니 ‘절제하라’는 조언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닿지 않는다. 그것이 ‘미덕’인지, 아니면 ‘견딤’인지, 혹은 ‘단념’인지에 따라 무게는 너무도 다르다. 절제를 부의 시작으로 보는 시선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무심할 수도 있다.




남기지 않는 삶, 그리고 부의 또 다른 의미


저자는 ‘아직 쓰지 않은 돈’을 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남기지 않고 써버린 어떤 순간들이 내 삶에서 가장 값졌던 기억으로 남는 것을 본다. 그것이 여행이든, 가족과의 식사든, 누군가에게 건넨 작고도 따뜻한 선물이든지 말이다. 쓰지 않은 것이 반드시 부라면, 이미 쓴 것에 담긴 의미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는 부의 구조를 배웠지만, 동시에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부란 무엇인가. 쓰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잊지 않는 것인가.

책을 읽고 나서 '그럼 이렇게 부자가 되어야지!' 가 아니라, '이거 완전 어이없는 논리잖아'라고 하는 내 모습을 보니 근시일 내에 부자 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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