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xt chapter for my forties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아직 어안이 벙벙하긴 한데, 분명히 나에게 벌어진 일이 맞다.
그렇게 나는 만 5년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
이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떠나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도 내가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퇴무새(퇴사할끄야! 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하는)와 불만동자로 분류되지는 않기에, 이직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되지 않는다.
현재 직장에서 만 5년을 다니는 동안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열정이 조금 식은 상태였기에, 마치 수비드 치킨으로 조리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면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인성이 좋았고,
화이팅하는 것의 목표가 돈돈- 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며,
직전 회사보다 훨씬 워크에틱이나 애티튜드가 좋은 동료들이 곁에 있어서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속도가 지금의 조직과 맞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행동했어야 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내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바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어영부영 즐거운 수준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5년이 지나게 되었다.
지난 5년간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이력서에 쓰고 면접을 볼 때 많이 활용한 '지난 5년간의 성과'도 크게 부풀리진 않은 수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좀 더 치열하게 살았고, 인생이 갈려나가는 수준으로 일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력서에 기재되는 나의 경력이 지금보다는 배 이상으로 많았을 것이다.
여하튼 5년간 좋은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내게는 권태로 분류되는 매너리즘보다 더 큰 공허함이 있었다. 내가 지금 당장 열의를 가지지 못하게 제한하는 여러 구조적인 한계도 있었다. 물론 선배 중에는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타파하고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계약구조를 변경하려고 노력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분을 나의 롤모델로 선정하고 그의 다음 스텝을 좇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의 다음 단계로 선택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내가 이번에 이동할 때 가장 크게 중점으로 두었던 부분은 이렇다.
40대에도 내가 쭉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이후에도 내 이름이라는 브랜드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나에겐 후견인도 필요하고, 내가 잘 벼린 칼처럼 그들에게 힘이 돼주어야 할 순간이 왔다. 내가 커지려고 해야, 모두가 커지면서 행복해지는- 그런 그림 속으로 이제 걸어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기존에 하던 일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고, 내가 새롭게 해나가야 하는데 팀단위가 아니라 각자 개인의 역량과 시간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없지는 않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며칠 뒤면 새로운 출근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출근을 앞두고 나의 지난 직장생활들을 돌이켜 보았다.
메뚜기처럼 회사를 자주 옮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원클럽맨은 아니다. 회계법인에서 만 5년 근무하고 증권사로 이직하였고, 증권사에서 만 5년을 일하고 VC로 가게 된 것이다. 마치 5년을 주기로 이직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마침 때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이전 회사에서 이직을 결심할 때와 지금 상황이 꽤나 유사한 평행이론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 회사인 회계법인에서는 무난하게 회계감사 업무를 담당했다.
3년차부터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비상장회사에는 팀장으로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대형 건설회사의 핵심 파트의 맡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든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루틴-한 일이 되어버렸고, 더 새로운 걸 맡기에는 업무적인 비효율만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모두 우쭈쭈-해주며 내 노고를 인정해주니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찔렀다. 갓 서른살이 된 놈이 연초를 뻑뻑-피워대며 입에는 쌍욕을 달고 살았다.
이미 회계법인에서 '감사본부'에 있게 된다면 배울 일은 다 배웠다고 자평했었다. 앞으로 남은 일은 매년 반복되는 형식적인 감사절차와, 저연차 회계사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암울했다.
일은 점점 어려운 것들이 내게 배정되는 것만 같고, 같이 일하는 동료는 하나같이 내 기준에 미달한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 그러다가 퇴사로부터 약 1년 전 즈음 기존과 다른 일을 맡게 되었다.
자본시장에 상장하는 IPO라는 업무를 할 때, 해당회사는 관련 법에 따라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으로부터 '지정감사'를 받아야만 한다. 이때 지정감사 업무를 진행하며, 회사와 감사인을 넘어선 이해관계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자자들도 있고, IPO 실무를 하는 주관사(증권사)도 있고,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2년에 걸쳐 GS건설의 자회사와 신약개발 바이오회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 그쪽으로 넘어가고 싶어졌다. 사회에 진정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회계법인이 아니라 좀 더 앞쪽(Front)에 있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열심히 주워듣고 다녔다. 게다가 지정감사를 하면서 회계법인에 정이 툭- 떨어지게 되었다. 지정감사를 수행하는 회계법인은 높은 감사품질을 보장해야 했는데, 그만큼 수없이 많은 문서작업과 회의, 리스크 검토 등등- 절차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런데 나의 상급자도 "나몰라라-", 팀원들은 "몰랐어요-" 하는 모습을 보며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의 방향은 더 앞쪽으로!, 그런데 날 받아줄 것 같은 증권사 IPO 부서로!
두 번째 회사인 증권사에서는 자본시장 중 주식 시장의 시발점이 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 즉 기업공개를 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전 회사에서는 회사 자체가 크다 보니 메가-클라이언트를 주로 담당해 왔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업무도 많고, 추후에 '나'라는 사람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 '회사 이름' 때문에 일하는 게 될 것만 같아서 불만이 컸다. 그래서 IPO를 하는 증권사 중에서 중소형 Deal을 주로 담당하는 중소형 증권사를 찾았던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조금 살랑살랑-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증권사의 생리와 IPO의 업무적인 특성을 전혀 몰랐던 것만 같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후에는 순조롭게 적정한 수준으로 IPO를 진행해 왔다. 운이 좋게도 회계법인에서의 경력으로 IPO 실무에서 꽤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관련 법령(자본시장법과 한국거래소 규정, 증권인수업무 규정,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기업공시실무 등등-)을 참고하면서 일을 했지만, 실무적으로 유관 기관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은 후배들이 다-해줬다. 나는 그저 다- 차려온 밥상을 쳐다보며 간은 맞는지- 반찬은 빼먹은 건 없는지- 보는 정도의 역할만 할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이는 증권사에 입사하는 친구들의 높은 자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CPA 자격시험에만 합격하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다. 그저 방구석에 앉아 시험점수만 높이다가 합격하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증권사에 입사하는 친구들은 어떠한가?
수많은 대외활동과 학점, 자격증과 인턴 생활, 선후배 네트워킹 등등-- 엄청난 과정을 뚫고 온 사람들이다. 게다가 면접도 1차, 2차, 합숙면접, 임원면접 등등 정말 다각도로 사람을 평가하기에 애당초 좋은 애티튜드가 아니면 올 수도 없는 곳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CPA를 합격해서 회계법인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업무를 진행했는데, 업무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아! 하면 어! 하면서 메아리쳐주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곳에서 일하는 기분이랄까-.
다만 아쉬웠던 건 상장!은 성공리에 마무리하였지만 상장 이후에 주가가 영-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장하려는 회사가 상장에 대한 의지라 꺾인다거나, 시점을 미룬다거나, 다른 주관사와 함께하기로 결정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증권사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모든 건 성공보수의 개념이기 때문에 일정과 시점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는 손가락만 빨면서 근근이 월급만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퇴사를 하기 2년 전부터 우리 하우스(증권사에서는 우리 팀을 우리 하우스...라고 부른다)에서는 색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IPO를 통한 상장수수료뿐만 아니라 자기자본투자(PI 투자) 및 투자조합 결성을 통해 회사에 투자하고 상장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하우스 측면에서는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자 앞으로의 방향성이었겠지만, 내게는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라고 운명처럼 느꼈다.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회계법인에서 내가 퇴사한 것은 '내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에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증권사에서도 내가 창출하는 가치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때, 마침 타깃으로 잡아야 할 업무와 직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IPO보다도 더 앞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곳인 것이다. 기업의 성장 수준에 따라 다양한 투자 라운드가 있어, 어느 곳에서 활동할지 결정해야 했다.
회계법인에서 증권사로 넘어올때의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VC는 하는 일이 뭔지, PE는 어떤 포지션에서 일을 하는지, 운용사는 투자 단계별/하우스 컨셉별로 어떤 회사들에 투자하는지 등등을 말이다.
나는 대체로 무던한 편이었다. 큰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기고, 바쁘지 않은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대로 두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상하게도 어떤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회계법인에서 증권사로 옮길 때도, 그리고 지금 VC로 가려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깊이 계산했다기보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아마도 내 인생은 늘 무던함과 돌발적 결단이 교차하며 흘러온 셈이다.
그리고 내가 10년간 일을 하며 터득한 '내게 중요한 가치'를 내게 되물어보았다. 그리고 답했다.
'나'라는 브랜드로 일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가장 앞단(Front)에서 일하는 것.
이렇게 10년간 일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VC에서 일하는 것이 되었다.
당장 9월 1일부터 출근인데, 어떻게든 잘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증권사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다. 알아본다고 열심히 알아보긴 했는데, 외부에서 본 VC와 내부자로서 VC는 다를 수 있으니 가서 부딪혀봐야겠다. 지난 10년과는 다르게, 내가 직접 방향을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Let it be.
그리고 이직을 위한 이력서에 내 취미를 '글쓰기'로 썼다.
글쓰기란 바로 브런치스토리에 글 쓰는 것이었다. 늘 반응이 좋았다. 글쓰는 사람이라며- 말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앞으로의 내 생각과 직업관도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써내려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