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는 걱정하고 싶지 않은 날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다.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 상태이다.
'먼저 이거 하고.. 음.. 그다음에는 이렇게.. 또 그다음에는..'
뭔가를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혼자서 시뮬레이션만 몇 번을 돌리는지 모르겠다. 뭐든 내가 이미 상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게 좋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이 생기는 걸 불편해하는 편이다.
나의 이런 성격은 대학을 미국으로 진학하면서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영어가 제2외국어이다 보니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이 잘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또 교수님이 하셨던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무언가 놓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더 꼼꼼히 이메일을 확인하고 듣기도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는 내 성격도 좀 도움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내가 이렇게나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몸을 맡겼던 것 같다. 그러던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머릿속 너무 많은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을 때 생각이 많은 만큼 신중한 거라고 했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생각 조각 중에 부정적인 것이 포함되어있을 때는 혼자 땅을 파고 끝도 없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어쩔 땐 무섭다.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너무 많은 생각은 오히려 자제하게 되는 것 같다.
문득 어렸을 때 아빠가 읽어주셨던 그림 동화가 생각났다. 작가 케빈 행크스가 쓴 ‘걱정하는 웜불리’라는 책이었는데, 주인공 어린 웜불리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이다. 책 속의 웜불리는 땅이 꺼지진 않을까, 심지어 부모님이 한밤중에 없어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어렸던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기에 그림을 보며 재미있게 읽었지만, 최근 들어 웜불리와 내가 가끔 겹쳐보인다. 갑자기 땅이 꺼질까, 하늘이 솟을까 걱정하진 않아도 그만큼 내 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글을 쓰면 작은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형태가 된다. 그래서 좋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걱정도 고민도 많을 때 글을 쓰면 한층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단순하게 생긴 내 그림처럼 생각도 단순해진다.
감사한 건, 내 이런 성격 덕분에 글과 그림이 내 쉼이자 취미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서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들 때, 글과 그림처럼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은 건강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