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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해가 무서웠다.

코로나 시대, 온라인 유학생의 고충

by 브라카 Braka

해가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질 때 자는 것.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이었다. 아침에 밝아오는 해를 보는 것,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내가 잃을 수도 있는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아침을 잃었다. 또 그 밝은 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나에게 아침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했는지 전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해 대신 달이 뜬 밤에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나의 대학교 라이프 첫 학기를 시작하면서 였다.


원래 같았으면 학교가 있는 미국으로 이미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퍼진 이후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이 되어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 학교에서도 재학생들에게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을 것을 택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대학도 처음, 미국 대학은 더더욱 처음, 미국 교수님도 처음, 심지어 나는 태어나서 미국 땅에 발도 디뎌 본 적 없었다. 첫 학기가 시작되기 두 주 전부터 이미 내 걱정 회로는 풀가동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혹시나 내가 놓치는 게 있진 않을까 사소한 이메일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온라인 수업 방식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온라인 계절학기를 들었던 경험이 정식 수업에 적응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가끔 헷갈리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 교수님까지도 온라인 수업이 처음이었기에 내가 궁금했던 것은 거의 모두가 모르거나 같은 질문을 하는 상태였다.

나는 오히려 이 편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시차로 인하여 감수해야 하는 아주 늦은 수업시간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화, 목 새벽 1시 15분에 중국어 실시간 수업이었는데, 그마저도 '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로 학기 후반엔 2시 15분으로 1시간 밀려났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새벽 수업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전에는 주말이 되면 흘러가는 밤 시간 조차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안 자고 더 버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새벽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때까지 의무적으로 버텨야 하는 것은 놀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것과는 달랐다. 수업을 듣기 위해선 정신도 멀쩡해야 했다. 특히 교수님이 영어로 중국어를 가르치시니, 영어와 중국어 둘 다 배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더 집중해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첫 학기에는 과제하다 보면 수업 외에도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저녁 7시쯤 낮잠을 잠깐 자고 아침에는 주로 11~12시쯤에 일어났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쳐둔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의 푸른빛이 들어왔다. 아침해를 가장 반가워하던 나였지만 그 아침 해는 정말 미웠다. 나는 이제 좀 자려고 하는데 커튼을 쳐도,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밝은 기운 때문에 푹 잤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아침이면 윗집, 옆집에서 들리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마저도 막 자려고 누운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밤에는 혼자 방에서 한창 과제를 하다가도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혼자인걸 깨달았을 때 너무 외로웠다. 낮에는 그나마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해를 보며 '깨어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밤에 창문을 보면 밖이 칠흑처럼 깜깜했다. 나는 왜 남들 다 자는 밤에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에 억울했던 적도 많았다.


막상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날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 그때 감정을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 낯을 가리는 감정처럼 낮에 밝은 해 아래 서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 같다.


되게 반가운데 굳이 내가 먼저 가까이 가고 싶진 않은 그런 느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기숙사에 살 때도 저녁 소등시간이 가까워지면 조금은 단호하게 친구들을 각자의 방으로 되돌려 보내던 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밤에 일찍 잠을 자야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공기를 느끼며 할 일을 하는 것을 편해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었다. 나와는 반대로 밤늦게까지, 가끔은 내가 일어날 때까지 깨어 있는 친구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이랬던 내가 아침 해와 낯을 가리다니. 스스로 꽤나 놀랐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정까지 들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것으로 부터 오는 스트레스, 과제와 시험에서 오는 부담감과 약간의 우울감이 뭉쳐 폭발할 수도 있었지만, 학기 내내 꾸준하게 했던 운동이 그런 감정들을 나름 다스려 줬던 것 같다. 몸이 익숙해질 찰나에 학기가 끝나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그렇게 그리웠던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이미 내 몸에는 비정상적인 패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며칠을 고생하고 나니 전처럼 다시 아침해를 반갑게 맞이 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중국어 수업이 새벽 4시 15분이다. 그 시간이면 원래보다 좀 더 일찍 자고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역시, 나는 밤늦게 보단 아침 일찍이 편한 것 같다. 물론 새벽수업은 아침에 못일어나면 끝이기에 자기 전마다 불안해도 밤에 깨어있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갑자기 생각난 아침에 일어나는 꿀팁

자기전에 일어나고 싶은 시간을 속으로나 입으로 중얼거리면 아침에 꼭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

"4시.. 4시.. 4시에 일어나야 해"

자는 내내 무의식중에 긴장을 해서 그런걸까?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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