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공개되는 세상은 사람에게 과연 이롭기만 할까
"기사 봤어? ooo학폭 떴더라"
"그래? xxx도 떴던데, aaa도 그렇고 말이야. 한 명 폭로되니까 줄줄이 다 터지는 것 같아"
"근데 xxx는 확실해? 내가 방금 본 글에서는 또 아니라던데"
"요즘에는 하도 가짜 폭로 글이 늘어서 뭐가 맞는지 구별도 안가"
최근 들어서 SNS를 통해 연예인들의 학폭 관련 사건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가끔 학폭 관련 기사를 본 적 있었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서 전보다 더 관련 기사들이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새로운 기사나 카더라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생각하던 그들의 이미지가 깨지면서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저 기사에 나온 내용들이 진실이라면, 피해자들은 그들이 티비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다 더 상처 받고 아파했을지 마음이 아팠다. 내가 피해자였다면 그들의 웃는 모습, 잘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티비 보기를 꺼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 한 두 기사를 보았을 때는 그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그들의 이미지에 속았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상 인물이 2명, 3명, 5명으로 점점 늘어나고 몇몇 폭로 글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마음 한구석에 찝찝한 감정이 생겨났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학창 시절은 어땠었나?
오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나도 어린 시절 사이버 학교폭력을 경험한 적 었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게 학교 폭력 범위에 속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그래도 사건 전말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나와 친했던 무리 아이들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서 내가 그들과 놀지 않고 다른 친구와 어울렸다는 이유로 일으킨 일이었다.
나는 어느 날 저녁 그룹 카톡방에 초대되었다. 두 명의 친구들은 일부러 나를 그 방에 초대하고도 없는 사람 취급하며 계속해서 비방하는 말을 하였고, 한 명은 방관하였다. 뒤늦게 카톡을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만큼 큰 두려움을 느꼈다. 앞서 말했다시피, 당시에는 SNS 학교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였고, 막연한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에 바로 그 방을 나갔다. 그 사건은 이후 흐지부지 해결인 듯 아닌 듯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온라인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을 배웠고, 내가 당했던 일이 일종의 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만약에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친구들이 성공하여 잘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떠올려보았다. 싫었다. 적어도 내가 그들보다는 더 잘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공인이 되어 방송에서 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나에게는 위선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으로 시작해서 떠올렸던 이 감정이 진짜 피해자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일 것이다. 나는 이제 당시 사건에 대해서 기억도 잘 못하고, 그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하고 넘길 수 있음에도 분명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많이 힘들고 아팠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그 감정을 감당하고 살았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번엔 또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 보았다.
한창 사춘기였던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꼭 짝수로만 다녀야 했다. 학교 활동에도 짝이 필요한 상황이 잦았고, 소외되지 않으려면 친한 무리 안에서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닐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당시 내 무리에는 나 포함 6명이 있었는데, 학기 중반에 새로운 친구 한 명이 전학을 왔다. 우리는 새로 온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짝수가 아닌 7명, 홀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누구 한 명 소외되지 않기 위해 서로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다 원래 무리 안에 있던 친구 한 명이 조금씩 소외되기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그 당시 나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나갔으니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 소외되었던 그 친구는 많은 상처를 받았고, 우리는 다 같이 상담실에 불려 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른 건 기억이 안나도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너희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너희가 다수이기 때문에 가해자, 그 친구는 피해자인 거야.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 원래 그래. 이대로 가다가는 이 사건이 학교폭력까지 될 수 있는 거야."
내가 가해자라니. 당시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누구와 싸우는 것을 유독 싫어해서 어렸을 때도 항상 말로 풀고 화해했던 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니.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어렸다. 그날 다행히 그 친구도 학교에 와서 다 같이 울고 불고 한바탕 '내가 더 미안해'가 시전 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만약에 나와 다투었던 그 친구가 그 사건을 '학교 폭력'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가해자가 되고, 그 친구는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내가 한순간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번 사건들이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일을 저지른 적 없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말 내가 정말 깨끗하게만 살았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했던 행동들이 남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고, 내 행동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 대상자의 기억 속에는 어떤 증거보다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과연 나만 이럴까. 모든 사람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거도 있고,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분명히 있다. 일반인인 나는 원한다면 부끄러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지만, 공인이나 연예인들은 그들의 모든 생활이 기사화되기에 더 이슈가 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공인이고,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로 활동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일정 부분에선 감당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 미디어 사회에는 적정 선을 넘어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되는 일종의 TMI도 너무 많다.
과연 이것까지도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정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