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말
장래희망을 적어보세요.
꿈을 적어보세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어보세요.
되고 싶은 직업군을 적어보세요.
학교에 다닐 때, 또는 학교에 가기 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들.
아나운서, 레고 디자이너, 패션 CEO, 기자 등등..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잘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잠을 자다가 꾸는 꿈에서는 파란 하늘을 날아 단숨에 파리에 갈 수 있고, 드넓은 해바라기 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다.
일상생활 중에 꾸는 꿈에서는 내가 당장 가지고 있는 목표를 이루기도 하고, 시련이나 고비 없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렇기에 꿈은 사람에게 가장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가장 잔인하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같은 꿈을 100번, 200번 심지어 1000번을 꿔도 현실은 꿈을 따라가지 않는다. 현실에서 내가 몸으로 직접 부딪히지 않는 이상 꿈은 꿈으로 떠다닐 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말이 되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셨다. 그런 부모님을 따라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도 모두 교회에서 일어났다. 특히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열리는 다양한 교육에 많이 참여했다. 그 교육 대부분의 내용은 '꿈은 찾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때로는 집중 못하고 멍 때릴 때도 있었지만, 자주 비슷한 주제를 접하다 보니 꿈에 대해서 고민할 기회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배웠던 꿈을 정의 해보지면, 꿈은 단지 특정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가수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장래희망'이지, '꿈'은 아니라고 했다.
"아, 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떤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구나."
어렸을 때부터 꿈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 가지게 된 것 같다.
우연인지, 내 고등학교 이름에도 '꿈'이 들어갔다. 학교 이름에 꿈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큼 학교에 있을 때 내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고 앞으로 이루어갈 일들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뭘 했을 때 즐거운지 알게 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나를 콕 집어서 이길로 가겠다!라고 정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 대학교 학과를 정하고, 다음 학기이면 새로운 학교로 편입도 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날그날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살면 되겠지 생각하다가도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내 삶이 너무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꿈은 있는 것 같았는데, 당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무엇도 고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질문,
네 꿈이 뭐니?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내 꿈은 나와 멀리 떨어져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