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스피킹 섹션 교수님께서 항상 빼놓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Don't forget to tell your story! audience always wants to know about you."
어떤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개인의 경험이나 관련 사건을 녹여서 풀어낼 때 다른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가진다는 것이 교수님의 생각이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강조하실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세상을 바라보니,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스토리는 다른 어떤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워졌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소비하는 상품도 다양하고 많은 브랜드에서 나오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어떤 부분에서도 독점시장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선택지 중에 굳이 내 컨텐츠, 내 글을 선택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야기이다.
더 이상 사람들의 머리가 아닌,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선택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팬덤이 돈이다
이 강력한 문장은 매일경제 잡지 2월호의 제목이다.
아침에 거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집에 있는 잡지 거치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제목을 보자마자 잡지를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만으로도 꽤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팬덤이라고 해서 아이돌의 팬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애플이나 테슬라 같이 특정 상품을 파는 브랜드들도 이제는 단지 상품의 퀄리티로 승부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각 브랜드의 상품을 고정적으로 소비하는 두터운 마니아 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기사를 읽는 내내 동의의 의미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쉽게 이 이야기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에 나도 비슷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 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에 방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혼자 있는 방이 때로는 적막하게 느껴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하면 이 고요를 깨고 신나게 숙제를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유튜브 검색란에 '신나는 음악'을 쳤다. 요즘에는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처럼 노래를 한 번에 모아 둔 영상이 많기 때문에, 내가 굳이 노래를 하나하나 고르지 않아도 원하는 영상만 틀어두면 계속해서 좋아하는 분위기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스크롤을 내리던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청량한 바다 사진이었다.
대학 과제에 침침해진 눈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듯한 색감의 바다였다.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영상을 클릭했다.
노래 선곡도 꽤 마음에 들었다.
모두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지만 적당히 흥이 나고, 어쩔 땐 들으면서 힘이 날 정도로 신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모두 k-pop이었는데, 나는 사실 공부할 때 케이팝을 듣지 않는 편이다. 평소에도 노래 듣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가사도 빨리 외우는 편이라, 공부하고 있을 때 자꾸 아는 가사가 귀에 들리면 글자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잘 모르는 노래들이라 그런지 이 플레이리스트는 공부하는 데에 별로 지장을 주지 않았다. 도리어 떨어져 있던 텐션을 올려주고 맑은 정신으로 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이틀, 공부할 때마다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게 되었다.
매일 같은 노래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신나는 노래의 가수는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맨날 들으면서도 대충 지나쳤던 제목을 처음으로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NCT라는 그룹의 노래였다.
그렇게 나는 엔시티 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가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노래를 하도 자주 들어서 이미 수록곡까지 빠삭하게 아는 정도였다. 노래를 알게 되니 NCT 팀 자체에 대해서도 궁금해져서 유튜브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유입되는 만큼, 엔시티도 유튜브 자체 콘텐츠가 다양했다. 또 브이 앱이나 버블같이 팬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플랫폼도 많았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 단지 노래와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팬들과 공유하며 두터운 팬층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접하면서 교수님께서 왜 그렇게 우리에게 스토리를 강조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현대 사람들이 찾아서 소비하는 컨텐츠는 높은 퀄리티가 기본이다. 내가 엔시티 노래를 들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것도 기본적인 노래의 퀄리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높은 퀄리티의 노래는 멜론 차트만 봐도 수두룩하다. 그 후로 더 깊게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스토리였다. 아티스트 개인의 삶을 팬들과 공유하면서, 아티스트가 아닌 한 사람으로 팬들이 공감하고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 삶도 이처럼 스토리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때때로 성공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어떤 사람은 특출 나게 운동을 잘해서, 또 어떤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나는 어디에 비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은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 누구도 나와 완전히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 이유 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내 스토리들이 모여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흥미와 관심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터넷 소설만 읽어봐도 글의 종류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똑같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어떤 소설은 내용의 기반이 탄탄한 반면에, 어떤 소설은 내용도 배경도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렇게 기반이 고르지 않은 글을 읽다가도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고 금세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만일 내가 계속해서 내 이야기로 글을 쓰기 원한다면, 지금 기본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