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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혼자 여행을 떠나다(2)

21살 온라인 유학생의 당일치기 경주여행

by 브라카 Braka

경주로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귀찮다.. 가지 말까?"


사람 마음이 참 멋대로인 게, 분명 전날 자기 전까진 두근두근 설렘에 가득 차 있었는데 며칠이 지난 것도 아니고 바로 다음 날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혼자 놀러 가려면 떠나기 전에 과제도 다 해야 하고, 씻고, 준비하고... 아아 몰라 가기로 했으니까 오늘은 꼭 간다!!


얼른 오전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마무리하고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차를 타자마자 첫 번째 관문이 나를 가로막았다. 바로 황리단길의 주차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경주에 놀러 갈 때는 뒷자리에서 풍경을 감상 하면서만 왔지, 한 번도 차를 어디에 세워야 한다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기억 속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 세웠던 공영주차장을 머리에 그리면서 일단 대충 황리단길을 내비게이션에 쳤다.


차를 타고 경주로 넘어가는 익숙한 도로를 탔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단순하게도 혼자 차를 몰고 왔다 갔다 한 시간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내가 집순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은 너무 답답했다. 또 원래라면 지금쯤 미국에 있는 학교에 있어야 하지만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에 있기로 하여 총 두 학기를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2학기 수업을 위해 밤과 새벽을 오가며 억지로 잠의 패턴을 바꾸는 것에 벌써 많이 지치기도 했다. 자꾸만 다운되는 기분과 마음을 전환하는 것이 이번 여행을 떠난 주 목적 중 하나였다. 드라이브할 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흥얼거리며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황리단길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날을 잘못 잡았음을 깨달았다. 하늘은 화창하게 맑고, 날씨는 너무 포근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혼자 여행하기에는 날이 너무 좋았던 거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주말 아닌 평일 흐린 날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의치 않고 점심을 먹기 위해 텐동 집으로 들어갔다. 이번 여행에 계획 따윈 없다고 다짐했지만 유일하게 생각해둔 장소였다.


"몇 분이세요?"


"혼자요!"


많은 사람 사이에서 꿋꿋하게 혼밥을 했다. 한창 학원 다닐 때 혼밥을 자주 했었는데 그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썩 나쁘진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황리단길 텐동 맛집 '여도가주'


나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과제도 빨리 끝내고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점심 지나고 나니 사람이 더 많아졌다. 원래는 황리단길에서 점심을 먹고 조용한 카페를 찾아서 그림도 그리고 글을 쓰려 했는데 포기했다. 아쉬운 마음에 소품 샵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엄마 드릴 빵을 사서 바로 차로 돌아와 버렸다.


황리단길 빵카페 '랑콩뜨레'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마늘빵을 샀다.


이미 진이 빠진 상태에서 집에 갈까, 차에 앉아서 고민했지만 역시 이대로 첫 혼자 여행을 끝내기엔 아쉬웠다. 나 스스로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안 가려고 했지만, 결국 자주 가던 스타벅스로 차를 돌렸다.


당이 무지하게 땡길때 딱인 스타벅스 자바칩 프라푸치노


스타벅스에서 차갑고 달콤한 커피를 하나 받아서 옆 보문호 주차장에 차를 댔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멍 때리다가, 노래를 틀고 그림을 그렸다.

날씨가 따뜻하고 하늘도 맑아서 그런지 오늘의 추억을 꼭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게 내 첫 여행의 전부이다.

실컷 혼자만의 시간을 차에서 누리다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후회 없이 집으로 향했다. 어쩌면 외롭고 조용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 생기 없고 멈춘 것 같이 느껴지던 내 마음이 다양한 색깔로 물드는 경험이었다. 또 한 가지, 그날따라 날씨가 더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벌써 봄이 오고 있었다. 나는 겨울 코트에 코듀로이 소재의 바지를 입고 있는데, 내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티에 청바지만 입고 있었다. 가벼워 보였다.


언제 이렇게 봄이 왔지?


황리단길 골목


[ 여행하면서 느낀 점 ]


- 카메라를 챙겨갔지만, 카메라로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하루종일 카메라를 들고 찍는 유튜버들이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

- 혼자 공영 주차장 찾다가 다시 고속도로 갈뻔했다. 내비게이션을 잘 보고 운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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