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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Feb 15. 2021

선발캠프의 기억

나의 학교, 대안학교에 대하여(2)

선발캠프에 대한 기억

선발 캠프에 대한 기억을 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 한 명이 있다.


"안녕! 이름이 뭐야?"


난생처음 지내보는 기숙사 생활에, 어색하게 침대 틀에 걸쳐 앉아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 게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인지 그때 처음 느꼈다. 이 캠프에서 떨어지면 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겠지만, 그전에 이 친구와는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밝게 인사하던 그 친구는 지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캠프 내내 무엇을 했냐. 책을 읽었다. 글을 쓰고 수업도 들었다. 심지어 남의 학교(그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밭에 있는 배추도 뽑아 날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 내 식물 하나도 제대로 키워본 적 없으면서 그 날 배추 뽑는 일은 그렇게나 열심히 도왔다. 내가 참 간절하긴 했었나 보다.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중 하나는 존대어와 꿈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존대어란, 윗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처럼, 부모님이나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생끼리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처음 존대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간질간질 쑥스러웠다. 나보다 윗 학년인 도우미 선배들에게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같은 또래의 선발 캠프 동기들에게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부끄러울 바에는 아예 기회를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되도록 친구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꿈 이름은 쉽게 말해서 자신의 이름 대신에 불릴 닉네임을 정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학생, 선생님 다 가리지 않고 "(꿈 이름)님"이라고 불리게 된다. 꿈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언급하고 싶다. 나는 그 당시 정식 학생이 아니었기에 꿈 이름을 만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꿈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새로웠다.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이름이 아닌 내가 불리기 원하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불릴 수 있다니.


아무래도 꿈 이름과 존대어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매우 강렬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차에서 부모님께 너무 신기하다고, 존대어를 사용하니까 내 입에서 비속어가 사라졌다고 열심히 재잘거렸다. 원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편이었으나,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일반학교에만 있다가 대안학교에 처음 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더 민감하게 비교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자유로운 수업 진행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 모습 모두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학교'라는 이미지에 딱 알맞았다. 그렇기에 선발 캠프가 끝난 이후에도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일 오후였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중학교 3학년이었기에, 평소와 같이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그 날이 바로 학교 입학 발표가 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도 열심히 써서 냈고, 입학 캠프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빨리 뛰어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업에나 집중하자는 생각에 점점 결과 발표에 대한 생각이 흐릿해질 때 쯤

반 친구 한 명이 뒷문을 열며 나에게 말했다.


"너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던데?"


교무실로 걸어가던 그 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 반에서 교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에 온갖 생각을 다하며 걸었다. 떨어졌다면 어떡하지? 이미 내가 선발 캠프에 다녀온 걸 아는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앞으로 나는 어떡하지? 그 길이 그렇게나 먼 길인 줄 전에는 몰랐다. 교무실의 문을 잡고 짧게 기도를 중얼거리곤 드디어 문을 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어디에서도 이렇게 자세히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겪게 된 이야기나 알게 된 것들이 이 이야기를 빼고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다. 내가 받는 교육에 대한 의구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대안학교를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이 학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후의 나를 상상 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앞서 학교에 대해 긍정적이고 밝은 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대안학교 학생으로서 살아가는 3년에는 분명 힘든 점도 많았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내가 받을 교육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에 따른 지금의 결과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산책을 하며 만났던 학교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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