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마음이 만든 거리
내 육아 휴직은 길었다. 일의 특성상 임신을 확인한 시점부터 아이가 두돌이 될 무렵까지 휴직이 가능했고 첫째 휴직이 끝나갈 즈음 다시 둘째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복직이 다가오자 다시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 어린 두 아이를 돌봐줄 분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앞섰다.
때마침 남편은 유학을 하고 있던 시기였고 입주 이모님을 구해야만 복직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업체들을 통해 여러 이모님들을 면접하게 되었다. 구직자들의 면접을 보는건 나였지만 동시에 내가 면접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근무 환경은 어떤지, 아이들 나이와 성별, 급여 인상은 언제 어떻게 되는지 등 경험많은 도우미들은 나보다 한층 깐깐하게 면접을 진행했고 그 과정이 이미 큰 스트레스 였다. 가뜩이나 내 공간에 낯선 누군가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게 불편한데 아이들을 긴 시간 남의 손에 오롯이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영 마뜩치 않았다. 결국 그중 아이들 너무 예뻐하시는 티가 나는 분과 함께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회사 생활도 다시 시작이 되었다.
이모님은 특히 어린 둘쨰 아이들 많이 귀여워하셨다. 첫쨰도 거의 할머니뻘 되는 이모님을 곧잘 따르는 것 같았다. 가장 어려운건 나였다. 아이들을 맡기니 내가 원하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도 남에게 싫은 소리하기를 어려워했지만 내가 힘들 정도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쉬는 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마음이 편했고 같이 식사를 할 떄면 마음에 안드는 식단이나 위생관념도 그냥 넘어가는게 스스로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비행으로 없던날 cctv로 아이들 모습을 보시던 엄마가 이모님의 행동에 화가나 전화를 걸어 다그치시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저녁으로 찐 감자만 먹이는데다가 어서 먹고 나가서 놀자고 재촉하는 모습에 속이 상하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이모님은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감자를 먹이고 돌아와서 저녁을 주려했다고 하셨다.
평소에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애기하지 못하는 걸 알고 계시는 엄마는 그래서 그 일에 더 격하게 반응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닌듯 했지만 그 일 이후 우리와 이모님간에 조금의 어색함이 생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과 어느정도 편해지고 익숙해졌을 때 즈음, 다른 집으로 가셔야 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가 하나고 일도 편안한 집이 있다고 주변에서 추천을 해줬다고 하셨다. 그런 감정이 들만큼 가까웠던 것도 아니지만 우습게도 배신감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예뻐해주셨던 모습은 뭐였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이모님을 찾는 일은 처음처럼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웠던건 그분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서툰 마음은 거리를 만들었고 내 마음도 힘들게 만들었다.
복직을 한 후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유중 아이들을 편하게 맡기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금 어렵더라도 나의 마음을 전해보려고 노력했다면 어떘을까. 그렇게 다가가 보려고 노력했다면 그분의 진심도 더 나에게 와 닿지 않았을까. 그분도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텐데 나 역시 내 불안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그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건 아닐까.
이모님과의 인연은 짧았지만 나에게 많은 걸 남겨 주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그리고 진심은 결국 말로도 행동으로도 전해야 전해진다는 것을. 그 때의 마음을 돌아보며 나의 서툼이 또 다른 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