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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bo Apr 13. 2022

보통명사가 될 이름, 양다솔

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별 넷 


이렇게 예쁜데 요다라고?


별 넷을 붙였지만 실은 다섯일 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선 헤아릴 수 없게 많다. 무량대수다. 지금 나는 마음이 급하다. 김혼비 작가 책감상을 쓰려고 마음에 몇 주를 품고 다녔는데, 양다솔이 훅치고 들어왔다. 말 그대로 치었다. 덕통사고다. 도서관 반납을 닷새 앞두고 잠 들기 전에 폈다가 그 자리에서 절반을 읽고, 다음날 눈 뜨자마자 나머지 절반을 읽었다. 징징 울다 웃다 또 눈물이 질금 났다. 이제 반납까지 23시간이 남았다. 이 마음은 써야 한다. 


양다솔은 가난하다. 대체로 쭉 가난했다. 양다솔이 어릴 때 부모님은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공장에 오래 다녔다. 옷 만드는 공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기계를 돌렸다. 아버지는 몸에 맞지 않는 옷같은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며 생활인으로 간신히 살았다.  양다솔이 성인이 되자, 양다솔의 아버지는 속세를 떠났다. 양다솔과 엄마의 삶에서도 나갔다. 한 부모 가정이 되니 삶은 더 가파르게 팍팍해졌는데 이 놈의 세상은 도대체 협조할 줄을 모른다. 


대안학교에 다니며 무던히도 괴롭힘을 당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시기에 절에서 2년을 살았다. 애초에 절에서 5일을 지내는 체험이었는데 그렇게 됐다고 한다. 대학에는 가야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말을 듣느라, 가긴 갔는데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아팠다. 그 엄마가 버는 돈이 정부가 보기에는 '너무 많다'고 했다. 양다솔은 알바를 세 개씩 하고 휴학을 하고, 그러고도 계속 가난에 들들 볶이며 산다. 


엄마는 말발이 억세고 덩치가 산만 한 장부다. 아빠는 친구가 없는 괴짜인데 코미디언이다. 양다솔과 엄마와 아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몇 시간씩 차를 우려마시며, 지치지도 않고 자기 몫의 방송분량을 확보하려고 기를 쓰는 연예인들 마냥 말로 치고 받고 웃기고 싸우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양다솔은 학교가 멈추고, 상점이 문을 닫고, 세상이 공포로 숨죽인 때 회사에 그만 나가기로 하고도 가난해지지 않았다. 절벽에 서있는 것 같았지만, 중헌 것이 무엇인지 아니까. '다도 세트, 고양이 두 마리, 돌침대 그리고 벤저민 나무.' 눈뜨자마자 차를 세시간씩 우려서 마시고, 고양이를 돌보고, 뜨끈하게 지지면서, 세 끼 밥을 복작복작 더 없이 잘 차려먹고 산다. 그렇게 양다솔에게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 


채집하듯 사 모은 온갖 희한한 옷을 몇 년이나 매일 다른 컨셉으로 색색의 신호등처럼 입고 다녔다. 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을 배꼽이 빠지게 웃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양다솔이 매일에서 건져올린 이상하고 슬프고 웃긴 이야기를 꼭 글로 쓰라고 다그치는 친구들이 있다. 양다솔의 삶은 소란스럽게 차고 넘친다. 


삶이 각박하면, 모난 곳은 더 상처입게 마련이다. 그렇게 다치고 깎이다 보면 빛나고 반짝이고 도드라진 부분은 흉터로 덮여 무디고 단단해진다. 둥그렇게 슬픔의 막으로 덮인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지킨다. 어른이 되고 있다고, 성숙해지고 있다고 애써 믿는다. 


양다솔은 밖으로 솟은 촉수를 더 갈고 닦아 창으로 만들었다. 길에서 전철에서 몸을 더듬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 10초만에 분노의 살기를 쏠 수 있게 됐다. 최대한의 광기를 담아서. 


'나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커다란 바위처럼 거대하고 묵직한 화가 쿵쿵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흘러와도 그들은 있었다. 여전히 그곳에 늘 새로운 모습으로, 역겹도록 같은 방식으로. 나는 얌전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왕이면 미쳐버릴 생각이었다. 죽음을 불사할 생각이었다. 나의 시선은 칼을 꽂아 넣은 듯 그 사람에게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눈알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주변의 공기가 나를 따라 진동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가난에, 도드라진 젊음을 꺾으려는 세상에 눌려 구김살이라도 생길라 치면, 배꼽 주름 사이에서 파낸 때 마냥 튕겨낸다. 물론 쿰쿰하고 시큼한 냄새는 충분히 음미한 후에 말이다. 


'왈츠가 뚠 딴딴, 뚠 딴딴이라면 뚠이 정시출근이었고 딴딴이 지각이었다. 이를 본 선배는 미니 드라이기를 구입해서 회사에 두면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릴 수 있으니 준비 시간이 절약될 거라고 친절히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희사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는 입사 1일 차 신입부터 대표까지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이 써 있는 듯 했다. '돈 벌러 왔습니다만.' ....나의 상사들은 줄곧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법',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가고, 밀레니얼 세대가 왔다' 같은 제목을 읽었다. 나는 감히 '받은 만큼만 일하는 직원'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고, 긴 시간의 시도와 노력 끝에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들에 한해서 빌려주었던 전세 보증금을 갚아야 해서 '다 죽어가는 얼굴'로 버텼던 회사를 '왈츠에 몸을 맡긴 듯' 다녔다고 하며 쓴 대목이다. 종횡무진 세계 요리를 준비해서 그림같은 도시락을 싸고, 퇴근 후에 정성껏 풀메이컵을 입고 주짓수, 요가, 필라테스를 하며 하루씩 곱표를 채웠다. RGRG 그 마음. 


양다솔은 삶이 더 없이 너절할 때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허탈한 웃음 밖에 없을 것 같은 때에 진심으로 깔깔 웃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보이스피싱인게 분명한 전화를 받고 '윤정현 수사관'에게 흔쾌히 국민은행에 7만 790원, 신한은행에 4천원, 우리은행 계좌 두개에는 각각 10만 5백원이랑 빵 원, 카카오 뱅크에 또 빵 원, 빚은 전세 대출 1억에 가계 대출도 있다고 일러준다. 잘 찾아보면 학자금 대출도 좀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윤 수사관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웬 거지가 걸렸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 말에서 윤정현 수사관의 목소리가 어딘가 조금 이상했던 것도 같다. 오늘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말에 약간의 다정함이 섞여 있었던 것도 같다. 꼭 전화를 받으셔야 합니다, 라고 말할 때는 조금 비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양다솔이라 부르겠다. 양다솔은 양다솔 작가가 아니라 양다솔이다. 나 같고, 내 동생 같고, 씩씩한데 웃기는 친구같고, 어느 날 깊은 눈으로 내 상처를 보고도 모른 척 잘 차린 밥상을 내어주는 동네 언니같고, 불현듯 아득한 심연에서 떠오른 듯한 잠언을 몸 쪽 깊숙한 커브볼로 던지는 도인 같아서다. 그녀는 머잖아 보통명사가 될 재목이다. 


이윤주 작가는 글쓰는 삶, 써야하는 이유를 담은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말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삶을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다솔 앞에 유구하게 펼쳐진 삶이 더 찐득하고 허망하고 쓰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결코 가난해질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양다솔에게서는 아주 새파랗게 웃기고 심장이 뚝 떨어지게 깊은 글로 나올 게 분명하니까.  그 글은 모두 내가 열렬한 사랑으로 읽을 테니까.  


* 이런 분들께 양다솔을 권합니다. 


- 징그럽고 지겹고 애틋해서 평생의 숙제같은 가족이 있는 분 (웃긴데 눈물 주의)

- '요즘 애들' 어떻게 사나, 왜 저런가 궁금하신 중간관리자 (꼰대력 약해질 수 있음)

- 일상 에세이는 너무 가벼운 것 같다 생각하시는 소설애호가 (선입견 완전히 깨드림)   

- 현실이 언제나 드라마보다 진하다는 에세이 매니아 (에세이가 된장국이면, 양다솔은 강된장)

- 세상과 불화하는 나의 광기를 담대하게 품고 싶으신 분 (호연지기 길러드림)  

- 그러니까 어지간한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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