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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bo Apr 15. 2022

범죄의 신이라고나 할까요

쯔진천, 추리소설 3부작 


무증거 범죄. ️ ️ ️별 넷 

️나쁜 아이들.   별 넷 

동트기 힘든 긴 밤. 별 다섯 



쯔진천, 중국 추리소설의 대신(대빵신)이라고 한다. 단 한번의 시선을 읽고 몇 년 전에 읽은 동트기 힘든 긴 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범죄3부작을 찾아 읽었다. 


추리소설 혹은 미스테리의 가장 중요한 뼈는 누가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왜 했는지다.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일견 이치에 닿지 않는 범죄나 사건이 일어났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골자로 한 퍼즐 맞추기이며 작가와 독자 사이에 밀고 당기는 두뇌 게임이다. 밀실에서 벌어지거나 도무지 오리무중한 살인, 평범(하게 보이는)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 드러나는 과거의 관계와 욕망...이 대충 우리가 아는 클래식한 범죄물의 얼개다. 대체로 단정한 할머니, 신부님, 혹은 탐정과 같은 명석한 추적자가 곳곳에 뿌려진 단서를 맞춰서 누가 어떻게 왜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이런 많은 영미권(이라고 대애충 싸잡아본다) 범죄물의 구성에 흥미를 잃었는데, 이유를 곰곰 생각하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영미권 범죄물의 결말은 거의 언제나 범죄의 진상을 추적자가 짜잔~밝히는 것으로 끝나는데, 거기에는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면 법적 정의가 구현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영화에 종종 나오는 미국 법정 장면에서 증인이 하는 선서가 이 믿음을 드러낸다. 증인은 'I swear to tell the truth, the whole truth, nothing but the truth.' 라고 선서한다. 증인은 진실만을 말하며, 그 진실은 실체적 진실을 담을 것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며 그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구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 증언이 나오면 기존에 구축된 법적 진실의 외연이 넓어지며 사건의 국면이 달라지는 멋진 결말이 종종 등장한다. 


정형화된 방식에서 미스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주로 미국 범죄물에서는 미치광이(사이코패스), 사이비 종교(컬트), 외계인이 등장하는 장르 변주가 창대하게 뻗어나갔다. 이 경우 이성이 결핍된 미치광이(누가), 이해할 수 없는 종교의 계시로(왜), 인간의 과학을 뛰어넘는 방식으로(어떻게) 사건이 벌어지기 떄문에 법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사실과 정의 구현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엑스파일 BGM이 두둥!)그러나 여기서도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이성과 합리에 근거하는 한 실체적 진실은 언제나 법적 진실로 포섭될 수 있고, 그로 인한 정의 구현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한국의 과거와 현재에서 법적 사실은 실체적 진실의 아주 일부이거나, 아니면 종종 전혀 동떨어져 있고 정의는 법적 사실과 실체적 진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쓰리고 잔인한 경우가 너무 많다. 모두가 피투성이 만신창이다. 한국에서 최근 이십여년간 수도 없이 양산되면서도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검사, 조폭, 드러운 정치인이 등장하는 범죄 누와르 영화들은 얼마나 법적으로 입증되는 사실이 허약하고 작위적이며 부조리한지를 보여줌으로써 외려 현실감있게 느껴졌고, 현실에서 요원한 정의 실현의 대리만족 통로가 됐다고 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더 큰 폭력을 통해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말하는 세상에서 누가 어떻게 왜만 밝히면 되는 범죄물은 심심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쯔진천의 범죄3부작은 타락한 세계관을 가진 나와 같은 냉소적 독자들에게 딱맞춤이다. 동아시아형 범죄물이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그러나 매우 친숙한) 부패와 폭력이 있고, 법적 사실이 어떻게 진실의 그림자 조각으로만 만들어지는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악다구니를 끌고 가는 인물들은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서 빚어졌지만 어디나 있을 법한 인간들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똑똑한 것 같다는 의문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중국이지 않나. 세상에 이런 일이 중국 말고 어디서 있을 수 있겠나. 완벽한 범죄와 완벽한 입증을 위해 합을 겨루는 전개는 흡사 무협지에서 봤던 것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지적 설계와 현실감 배경 외에도 쯔진천 작품의 미덕은 모순으로 가득한 잿빛 세상에서 정의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를 위해 3부작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옌량 교수를 비롯해서 진실을 알아내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들여 들려준다. 누가, 어떻게, 왜...라는 미궁 위에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이 진실을 쫓거나 덮으려는 것인가라는 수수께기가 한 겹 더 씌워짐으로써 독자는 추적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무너지고 짖이겨지는 삶의 묘사는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다. 


어쨌거나 이 글은 뇌피셜 선무당 장르비평 아니고 책감상이니까 추천을 해보자면....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무조건 긴 밤. 대가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느끼고 싶다면...무증거 범죄와 나쁜 아이들, 긴 밤의 순서로 읽기를 권한다. 확실한 꿀잼 보장.


* 이 글을 써놓고 친구와 얘기했는데 쯔진천 작가와 작품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찬반이 갈린다고 한다. 중국의 치부인 부패, 극단적 불평등, 이로 인한 인명 경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진 작가로 찬사가 쏟아진다. (나의 독서도 대략 이런 방향이었다) 한편으론 그가 시진핑 정부의 총애?를 받아 인기와 명예를 얻었다는 비판이 있다. 소설이 내용상 부패한 권력과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겨누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능한 경찰력(솔직히 지나치게 그렇긴 하다)을 바탕으로 정의를 쫓는다는 점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정권 내부의 반대세력을 숙청하려는 시진핑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는 해석이다. 중국의 정치 상황에 무지한 나는 양 측의 주장이 얼만큼의 설득력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두 시각 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창작물도 시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고, 그 기준은 언제나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는 일반론적인 생각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어령비어령 게으른 변명을 하며, 다음의 숙제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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