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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자객 Jun 24. 2019

@ 꿈은 어떤 맛일까?

- 무명작가와 공룡

(* <감정의 맛, 여덟 가지> - 예전에 썼던 글인데요. 당시에는 넘 유치한 느낌이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냥저냥 봐줄 만하네요. 총 8편인데 틈틈이 공개해볼까 해요. 오늘은 그 첫번째로 '꿈은 어떤 맛일까 _ 무명작가와 공룡' 편입니다. 단편소설보다는 짧지만 일반 글보다는 길어요. 보실 분들만 보시고 나머지는 패스하시길요 ~^^)


  “꿈이 뭐니?”

  사람들이 물었을 때

  꼬마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될 테야!”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어

  이 나라의 국민들을 잘 다스릴 생각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는 지극히 평범한 국민으로 살고 있다.

  이 나라의 평범한 국민으로 살기까지

  그의 꿈은 적잖은 수난을 겪었다.

  수난의 시작은 이러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렇듯

  차츰 대통령이 되는 꿈 따위는 잊어갔다.

  그는 좀 더 큰 꿈을 꾸었다.

  ‘로보트 태권 브이’ 같은 걸 만들어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볼 작정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늘을 멋지게 나는 태권 브이 흉내를 내며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 크게 이마를 찧은 뒤로는

  지구를 지키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악당을 물리치는 건 그냥 태권 브이에게 맡겨두고

  다른 걸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 즈음 양씨 성을 가진 선수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날이면 날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운동선수야말로 자신의 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골마을에선 꽤 난감한 일이었다.

  운동이랍시고 할 수 있는 건

  혼자 논두렁이든 밭두렁이든 달리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돌멩이에 부딪치고 무릎이 깨지고

  땅바닥에 넘어져 코피를 쏟은 후로

  미래에 있을 금메달의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기로 통큰 결단을 내렸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더 이상은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았다.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겠어!’

  처음에는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어볼 요량이었다.

  의사가 돈을 잘 번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썩은 이빨을 치료하기 위해

  치과를 다녀온 뒤로는 포기해버렸다.

  의사가 그렇게 공포스런 직업인 줄 몰랐다.


  새로운 꿈은 좀 더 현실적이었다.

  공부를 해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죄 지은 자들을 심판하며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다만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당연히 시험에 떨어졌다.


  실력에 맞춰 겨우 지방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맛본 공기는 이전과는 달랐다.

  자유로운 공기에 취해 낭만인지 겉멋인지 모를

  감상에 젖어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기타의 매력에 빠져 살던 그는

  또 한번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조씨 성의 가수가 있었다.

  무대 등장만으로도 비명에 가까운

  소녀팬의 열광과 환호를 받던 그 가수에게

  맞수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대학 가요제만큼 좋은 게 없었다.

  부랴부랴 연습에 들어갔다.

  밤낮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목이 쉬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요제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정작 무대에 한번 올라보지도 못한 채

  결국 예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한동안의 방황 끝에

  삶의 허무를 느낀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머리를 깎고 세속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출가를 결심할 때만 해도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수행에 용맹정진하여 큰스님이 될 작정이었다.


  반년이 채 되지 않아 회의가 밀려왔다.

  불가라고 해서 부처님의 세계만 있는 게 아니라

  거기 또 다른 세속이 있고,

  산 속에 있어도 번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차 예불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주지스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쯧쯧, 그 놈 뒷통수가 못 나서 큰스님 되긴 글렀군!”

  그는 발끈하여 이렇게 쏘아붙였다.

  “부처님이 뒤통수가 예뻐서 득도했답니까?

  뒷통수 못 생긴 놈은 그만 내려갈랍니다.”

  그 길로 짐을 싸서 환속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환속 사실을 알렸다.

  선배 한 명이 유난히 그를 반겼다.

  라이브 까페를 열었는데 노래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뭐 대단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용돈벌이도 하고,

  숙식도 해결하고 나쁠 게 없었다.

  아, 아니다!  그저 나쁠 게 없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일생일대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까페 종업원으로 일하는 나 어린 여자가 있었다.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상경한 후에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최 배우의 집에 찾아가

  가사 도우미라도 시켜달라고

  막무가내로 생떼를 썼지만 거부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까페로 흘러들어온 대책없는 여자와

  그는 눈이 맞았다.


  여자는 마침내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다.

  그 때부터 여자는 내 엄마가 되었고,

  그는 내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이 생긴 아버지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생계를 꾸릴 직업을 찾아야 했다.

  꿈은 이상이고 직업은 현실이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소년이 운전기사가 되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소녀가

  인형 눈알을 붙이는 아낙이 되는 게 현실이다.

  아버지는 파란만장한 꿈을 뒤로 한 채

  운전 면허를 따고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

  대통령을 꿈꾸던 소년이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

  비로소 이 나라의 평범한 국민으로 살게 된 것이다.


  평범한 국민으로 사는 게 무난할 것 같지만

  속속들이 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엄마라 불리던 여자는

  평범한 국민의 아내로 사는 게 버거웠던지

  뇌성마비의 동생을 낳고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동생은

  이태만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삶의 비애를 느낀 아버지는

  스스로의 목숨에 살의를 품고 청산가리를 마셨다.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나는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

  죽을 듯이 악을 쓰며 울었다.

  그 소리가 이웃의 담장을 넘어간 덕분에

  아버지는 살아날 수 있었다.

  치료를 받고 돌아온 아버지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한참 동안이나 내 새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잘못했다... 다시는 딴 생각을 품지 않으마!”

  그 때의 후유증인지 아버지는 잦은 두통을 앓았다.


  애기티를 갓 벗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모든 꿈을 접고 박제가 된 채

  평범한 시민으로 길들여져 가던 아버지가

  어느 날 뜽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넌 꿈이 뭐니?”

  나는 뭔가 힘 있는 게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공룡이요.”

  “... .”

  당시 공룡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진심이었다.

  거대한 공룡이 된다면 이 세상을

  멋지고 신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공룡처럼 크릉크릉 소리를 내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두 손을 앞발처럼 쳐들고

  아버지의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빠 꿈... ?”

  한참 뜸을 들이던 아버지가 대답했다.

  “음... 작가가 되는 게 아빠의 꿈이야.”

  아버지는 ‘작가’라는 말이 좀 쑥스러웠는지

  잠시 후 ‘무명 작가’라고 고쳐 말했다.

  “작가가 되면 뭘 할 수 있는데요?”

  “뭐 별 건 없어.  아빠가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버지와 나는 각자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공룡은 힘이 있는 게 아니라

  화석화된 유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말야.  어... 무조건 글을 잘 써야지, 암!”

  아버지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은 비유컨대 뭐랄까?

  ‘꽃이 피려면?  봄이 와야 한다!’

  ‘냇물이 바다로 가려면?  흘러야 한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내려야 한다!’

  이런 자연의 이치처럼 너무 당연하고

  또 너무 정확한 말이라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날부터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의 꿈이 내 꿈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니, 그리하여...

  나는 지금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유명 작가가 되고 싶은 맘도 없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꿈을 좀 더 확실하게 이뤄주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작가가 되었다.

  당신의 생애 동안 한번도 이루어본 적 없는 꿈이

  나를 통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아버지는 꽤나 감격스러워하는 듯했다.


  잦은 두통 때문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술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은 아버지가

  하루는 들큰한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와 말했다.

  “이제 내 차례구나.”

  “뭐가요... ?”

  “이제 내가 네 꿈을 이루어줄 차례라구... !”

  그러면서 큰 상자가 담긴 쇼핑백을 내밀었다.

  뜯어보니 다양한 종류의 공룡 모형이 들어 있었다.

  티라노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르스, 프테라노돈, 스테고사우르스, 안킬로사우르스... .

  첫눈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모양이나 재질로 봐서 값이 꽤 나가 보였다.


  아버지가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짐작컨대 어린 시절 친구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공룡인형을 사달라고 여러 날 졸랐지만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오랜 만에 보는 것들이라 정다운 옛 동무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구 참... 이런 거 가지고 놀 때는 지났죠.”

  아버지 딴에는 신경을 쓴 건데

  반응이 신통치 않자 다소 실망스런 눈치였다.


  유난히 첫눈이 일찍 내린 그 해 겨울,

  택시 영업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동료에 따르면 ‘아, 머리 아파!’ 하고

  뒷머리를 감싸쥐는가 싶더니

  통나무처럼 쿵 넘어져 얼굴을 찧었다는 것이다.

  코뼈와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로부터 뇌졸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안면수술을 받은 아버지의 얼굴은

  거의 공룡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의 말을 잊어버리고,

  그 대신 크릉크릉 하는 공룡의 소리를 냈다.  

  

  1차 치료를 마치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아버지 같은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처럼 서서히 멸종해가고 있었다.

  아니 멸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멸종만은 막아보려 애썼다.

  좋다는 음식, 좋다는 약을 널리 수소문했다.

  그런다고 거대한 자연의 순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멸종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갔을 땐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내 손을 쥐고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했지만

  가릉가릉 공룡의 가쁜 숨소리만 내뱉다 임종을 맞이했다.

  아버지가 공룡의 모습으로 멸종함으로써

  서로의 꿈을 완전하게 이루어주었다.


  멸종의 뒤에는 누구든 돌아가는 곳이 있다.

  둥그런 무덤을 보면 인간이 애초 왔던 그곳,

  어머니의 자궁을 닮았다.

  멸종은 끝이면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 지하에 잠든 아버지는

  서서히 공룡에 가까워지고 있다.

  1억년 후쯤에는 공룡처럼 완벽한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내 슬픔도 아버지의 슬픔도

  모두 화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끝>---------------


- 꿈꾸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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