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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자객 Feb 08. 2019

취중 객담

ㅡ하찮고 쓸데없는 이야기

3의 법칙이란 게 있다. 쉽게 말해 이런 거다. 어떤 사람 하나가 길 복판에 서서 태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행인들이 힐끔 보며 가던 길을 그냥 간다. 2명일 때는 조금 더 눈길을 끈다. 그래도 여전히 행인들은 가던 길을 재촉한다. 3명이 일제히 태양을 가리키게 되면 비로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행인들이 하나 둘씩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가리키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명이 다섯명이 되고, 다섯명이 열명이 되고, 열명이 백명이 된다. 이 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수백명, 수천명, 아니 수억명이 된다.


단지 호기심에 끌려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ㅡ 저 태양에 왜들 이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주고 있나요?

이 때 굉장히 지적인 사람이 앞으로 썩 나서서 대답한다.

ㅡ 저 태양을 좀 보시오. 약간 한쪽이 찌그러진 것 같지 않소? 저런 멋진 모양의 태양은 쉽게 보기 어렵소.

그러자 또 다른 유식한 사람이 나서서 반박한다.

ㅡ 아니오. 그건 부분 일식이 일어났기 때문이오. 저 태양이 위대한 것은 따로 있소. 오늘 따라 유난히  붉지 않소. 색감이 참 기가 막히오. 저런 아름다운 태양은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오!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말 꽤나 한다는 입 달린 유식한 자들이 전부 한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결국 2019년 어느날의 태양은 지구인들에게 아주 유명해진다. 멀찍이서 이 현상을 지켜보던 나는 남들이 들을까 조심하면서 아주 아주 조그맣게 혼잣말을 한다. (놀구들 자빠졌네!- 아무도 못들었겠지?)


현대미술로 내려올수록 유명세라는 게 어쩌면 3법칙의 태양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럴싸한 평론을 들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혼란스러워진다. 미술관에 걸린 세계적 명성을 지닌 화가들의 작품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혹 남들이 가리키는 무의미한 태양에 홀려 나도 손가락 하나 더 보태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곤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면의 미적 감각이 남들보다 형편없이 뛰떨어져 있든가! 근데 이런 얘기를 왜 주절대고 있냐고? 그냥 취중객담이니까!


입만 나불대면 심심하기도 하고, 아까운 공간만 낭비한다고 욕 먹을지도 모르니 그림 하나 첨부해본다.  

* <달 그림자> - 호일아트(은지화), 30cm × 42cm ~ 쿠킹 호일 위에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올린 뒤 한지로 배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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