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라...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저녁 늦은 시간 퇴근하고 집에서 좀 쉬고 있는데 고객사 구매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 황과장님 지금 브라질에서 문제가 좀 생겼어요. 지금 설계 담당자 2명이 차 타고 울산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과장님 회사로 바로 들어갈 예정이니, 대응 좀 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내려가는 그분들이 설명할 거예요~"
나는 무슨 일이 또 생긴 거지? 큰일인가? 저녁에 설계담당자 2명이 내려오면 큰일 난 건데...
많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가 잘못했으면 우리가 가야 하는데, 고객사 담당들이 직접 밤에 내려오는 것 보니 설계적인 문제겠지?라고 나름 합리적인 유추로 마무리하였다.
또한, 집에서 많은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내일이면 알겠지라고 결론 내리고 잠이 들었다.
브라질에서 개발하고 있는 감마FFV(FLEX FUEL VEHICLE) 엔진에 사용되는 연료튜브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 당시 감마FFV 엔진은 에탄올과 가솔린 연료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 친환경 소형 엔진이었다.
하지만 개발 단계에서 연료튜브 쪽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황과장님이시죠, 지금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주차장에는 어제 구매담당자가 이야기한 설계담당자 2명이 서있었다.
"아니, 밤새 운전하고 내려오신 거예요?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어제 이야기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개발팀 황과장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그리고 야간 장거리 운전이 힘들었을 것 같은 마음에 일부러 너스레 친한척하였다.
"하 네~, 아니요,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운전해서 좀 괜찮았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엔진부품설계팀 xxx입니다."
표정만 봐도 뭔가 단단히 큰일이 난 것 같았다.
회의실로 가서 팀장님하고 인사를 하고, 이렇게 급하게 내려오게 된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우리는 커피 한 잔 마셨다. 결론은, 초초긴급으로 연료튜브 형상을 변경해서 기존에 제작된 엔진의 연료튜브를 다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체해야 할 연료튜브는 완성차를 포함해서 10,200대분...
차량이 판매되기 전에 교체해야 되는데, 판매 론칭이 약 1개월 보름 남았고 더 늦출 수도 없다고 한다.
교체하는 시간과 브라질까지 운송시간도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최대한 빨리...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초도품 제작 완료는 20일, 총수량은 10,200개를 30일 이내 제작 완료.
난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보통 그러한 종류에 연료튜브를 설계변경해서 시제품 나오는데 평균 3~4개월 소요된다.
정말 급하게 요구해서 여러 명이 들고뛰고 해서 하면 2개월까지는 정말 어렵게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요구하는 시간은 20일이다. ‘가능한가??’
"아니~ 그 일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분위기가 싸해지고 설계담당자는 너무 강경한 톤에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아.. 고객인데 좀 심했나??'
주워 담으려고 애썼다. "아니~~ 보통 그 제품은 최소 아무리 들고뛰고 날고 해도 2달 걸리는 거라서..."
"어려운 거 압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긴박해서 그렇습니다. 저희 다 잘리게 생겼어요~~"
"위에 경영진들도 이내용 보고해서 아시니까 최대한 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고 올라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급하게 내려온 거예요.. 좀 살려주십시오."
'그렇지. 그렇게 큰 사고 치시면 회사가 가만두지 않을 건데...'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걱정이 되었다.
"우선 저희도 금형제작일정, 생산 CAPA, 인원 등 검토할 게 있어 관련팀 모여서 회의하고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공장장님한테도 보고 드리고 바로 회의하겠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는 동안 어제 연락이 온 고객사 구매 담당자도 우리 회사에 도착하였다.
연료튜브 긴급 생산 및 납품 해외 배송 관련 담당자는 다 모인 셈이다.
회의 주관은 고객사 구매 담당자가 진행하였다. 최종 브라질에 납품하는 일정까지 확인해야 하는 구매 담당자가 진행이 맞다. 이러한 긴급상황에 대한 스케줄은 거꾸로 계산한다.
최종 론칭 일자를 거꾸로 교환 일자, 브라일 육로 운송, 통관일자, 항구 도착일, 선박 운송 일정, 선적일, 수출포장, 제작 완료. 등등...., D- 며칠로 우리는 날짜를 거꾸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말 촉박하네..' 나는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으로 회의실 보드판을 쳐다보았다.
다들 '자자 스타트!' 하면서 지금 바로 후다닥 각자에 일에 투입되어도 될까 말까 하는 일정을 보면서 한동안 침묵했다. 솔직히 여기 모인 사람이 바로 실무에 뛰어들 수 없다. 금형 설계가 먼저 되어야 한다.
어쩌면 다들 저 날짜에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보드판은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금형설계, 제작, 세팅, T/O, 튜브 사양 확정, 제품 제작 시작, 항공 배송, 현지 Rework 인원, 일정 등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착수했다.
다음날은 고객사 품질보증팀 담당 차장이 회사에 방문했다. 역시 처음 보는 담당자였다.
고객사 품질보증팀은 캠페인 수량, 기간 등을 결정하는 담당자이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품질 비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처음 와서 나를 찾았다.
“이번 일은 우리 회사 설계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황과장님을 찾았습니다. “
“그럼 10,200대도 차장님이 결정한 수량인가요? 반갑습니다. 개발팀 황과장입니다.”
나는 준비한 명함을 수첩에서 꺼내서 그 사람이 내밀고 있는 명함과 교환을 하였다.
차장과는 잠시 미팅하였고, 어제 수립한 일정을 설명하고 제작을 하는 협력업체로 향했다.
뭔가 싸한 느낌이어서 빨리 헤어지고 싶었지만, 업체를 확인해야겠다는 걸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리 협력업체에 간 차장은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가기 전에 난 업체에 연락해서 정리하라고 전달했으나,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라 지붕에서
비가 새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작업장이 엉망이었다.
“차장님, 오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좀 엉망인 것 같습니다.
2일만 시간을 주시면 깨끗하게 정리해 놓겠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폭우가 와서 그렇다고 치고, 내일모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황과장님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차장이 돌아간 이후 난 공장장에게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오늘 정말 실망하고 갔습니다. 이러다가 협력업체 문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 업체는 2일 밤낮없이 모든 직원을 동원해서 정리하였다. 결과는..
이틀 후에 그 협력업체를 다시 찾은 품질보증 차장과 나. 내가 그를 태우고 업체에 도착한 순간
입구부터 이틀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그 차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황과장님, 고생 좀 하셨네요? 정말 그날은 제가 차마 말을 못 했는데,
제가 본 협력사 중에서 최악이었습니다."
"황과장님이 이 업체 살리셨어요!~ 이제 설계변경에 집중하시면 되겠네요~"
'정말 내가 이 업체를 살린 걸까?' 난 궁금증을 뒤로한 체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품질보증 담당자가 다녀가고 며칠 후 긴급 설계변경이 진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중간 점검에 들어갔다.
우려와는 다르게 일은 일정보다는 조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일이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계한다고 이틀 밤새웠습니다." “금형 마무리한다고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습니다.” 등등
“고생하셨습니다. 나중에 밥 한 번 사겠습니다.” ‘근데 밥값은 누가 주지??, 고객사에 받아내야 하나?‘
‘금형 세팅 후 시제품 제작이 잘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의 걱정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2주가 지나고 실제 라인에서 제품 제작이 시작되었다. 아직 100% 품질은 아니지만 처음보다 품질이 많이 좋아졌다.
“어떻게 내일은 품질 ok 품이 나올까요?” 나는 생기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는 한 이틀 밤 밤을 새운 사람 몰골로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게 밤새운 사람한테 하는 질문이냐고 묻는 표정으로..
나는 조금은 미안했지만, 브라질에 첫 lot 도착이 일주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재촉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품질에서 좀 기준은 좀 완화해 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어렵네요 “
“그 부분은 품질담당자하고 이야기해 볼게요"
고객들은 좋은 품질에 제품을 사용하면 만족도가 높아진다. 특히 외관 품질은 브랜드 이미지를 좌우한다.
자동차 부품은 외관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또한 안전적인 측면에서도 품질은 무조건 좋아야 한다.
안전 관련 부품은 특별히 품질이 우수해야 해서 특별 품질관리 프로그램도 있다.
연료튜브는 안전부품이다. 안전 관련 신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품질팀하고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기능하고 안전과 관련 없는 외관 형상 검사 기준 항목들은 타협해서 일정을 단축해야 한다.
미세하게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금형을 다시 수정할 수 없다. 고객사 구매 담당 파워를 이용해야 했다.
“대리님 A 구간 R 값이 0.2mm Spec에서 벗어납니다. 금형 다시 수정하면 일정을 못 맞추는데요. 어떡하죠?"
“그 구간 다른 부품과 Gap이 10mm 이상 있으니 0.2mm는 괜찮을 것 같다고 설계담당자 하고도 협의 했습니다. 그냥 진행하기로 황과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잉~ 문제생기면 나도 책임져야하나??, 나하고 똑같이 물귀신 작전인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 품질 팀장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네요.”
고객사 구매담당자는 우리 회사 품질팀장하고 통화했다. 기능상, 안전상 문제없는 부분이라 우리는 그렇게 그냥 생산하기로 했다.
그렇게 19일 차에 처음 1,000개가 생산되어 브라질로 항공 발송되었다.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진 일정이었다. 생산도 순조로워서 하루에 2,000개 정도 생산되니 5일이면 끝날 예정이다.
아직 마무리는 안되었지만, 구매담당자는 전화로 연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품질보증 담당자는 마지막 회의를 하고 단둘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황 과장님, 황과장님은 개발팀이고 저는 품질보증인데 이렇게 나서서 계속 저를 대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차장님이 저번에 우리 협력업체 한번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황과장님..." 고객사 차장은 뜸을 들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제가 바로 직전에 캠페인에서 다른 회사에 개발 임원, 개발팀장 다 잘리게 하고 왔어요.
제가 그렇게 하려고 한건 아닌데, 그때도 설계변경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제가 품질보증이라고 품질팀장, 품질담당자만 대응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정 맞추는데 어려움이 좀 많았어요!
그때는 업체 설계 오류였는데 개발팀에서 좀 나서서 해야 되는데 그렇게 안 하더라고요.
나만 애가 타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종결회의 때 제가 캠페인 수량/기간 등을 공표하면서 이 회사는 개발부서 없는가요? 설계변경 관련된 내용이 있은데 다 품질팀에서 대응하니 업무 진행이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캠페인 수량도 기간도 늘어났습니다. 도대체 개발 임원분은 뭐 하시는 분인가요? 회사에 관심이 없으신가요?라고 회장님, 사장님 다 있는 자리에서 제가 그렇게 소리쳤어요. 나중에 소문은 개발임원, 개발팀장 다 잘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좀 미안했습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 고객사 품질보증 담당은 저런 파워가 있었다. 누군가의 직장 생활을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난 모르고 대응했지만... 그 사람이 먼저 나를 찾아서 대응했지만..
진심을 다했다. 그것도 고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진심을 다해 도왔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또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우리 경영진에게 나를 추켜세워 주었다.
내가 직장에서 인정받게 해 주었다.
나의 직장에서 인정받기 두 번째 이야기 결론은
고객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그 진심이 결국 내가 직장에서 인정받는 기회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위에 결론이 아래 문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에
이 문장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친다.
'현재의 내가 누리고 사는 많은 것들이 과거의 내가 베푼 친절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 미래의 나를 만들지 않을까.'
-프린스턴대 수학과 허준이 교수-
2024.11.03
-슬기로운 주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