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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이순

이름이 가져다준 인연

by 재섭이네수산

제 의지와 상관없이 1956년에 저는 태어났어요. 지금은 억척스러운 시장 할매이지만 아기 때는 참 순했다고 해요. 그래서 순할 순 자를 써서 이름을 순이라고 지었고, 아버지께서 출생신고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근데, 아버지가 술을 마셨는지 동사무소 직원분이 술을 마셨는지, 아니면 기구한 운명의 서막이었을까요? 제 이름은 이이순이 되어있었습니다. 아주 순했던 이순이는 지금 당진어시장에서 물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었지요. 재섭이네수산! 제 아들의 이름을 걸고 말입니다.


이제 제 이름에 얽힌 고객님과의 사연을 적어볼까 해요.


언제나 매일같이 제 글을 보러 와주시고 댓글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글에 말없이 하트를 눌러주고 가시는 분이 계셨어요. 참 희한하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분의 성함이 제 눈에 뜨였고, '어떤 분이시기에 매일 내 글을 찾아주실까? 어떤 사연이 있으실까? 좋아는 하지만 말하기는 꺼려하는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인데도 말이죠. 이상하게 고마우면서도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만 제가 사연을 상상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부턴 가는 '오늘도 이 분이 오셨을까?' 일부러 확인을 하는 저를 발견하였답니다.


그러다 어제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분의 교통사고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9월에 당한 사고였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왈칵 걱정이 들면서, 나도 그냥 말없이 하트만 놓고 올 작정이었는데, 12월인 지금, 다 나으셨는지, 괜찮으신지, 안부를 건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이순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후유증 조심하세요."라는 걱정 어린 답글을 나도 모르게 남겨 버렸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글에 답글이 달렸지요. 아파서 치료받던 곳을 다쳐서 지금도 병원엘 다니고 계시다고 말에요. 감사하다며... 돌아가신 엄마 이름이랑 똑같아서 순간 울컥했다고 하셨어요. 아....그제야 알 것 같았어요. 이름... 이 이름 때문이었어요. 이이순... 내 이름이 그분의 어머니의 이름과 같았던 것이죠.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과 같아서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이 분은 매일 엄마를 만나는 마음으로 제 글을 보러 오신 게 아니었을까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울컥하였어요. 그분의 답장을 조금 남겨볼게요.


"요즘 꿈에서도 볼 수 없어서 엄마가 너무 그리웠는데 우리 막내 잘 지내고 있냐고 대신 안부를 물어보는 거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어머니가 팥죽을 좋아하셨는데, 곧 동지가 다가오니 더욱 보고 싶어졌나 봐요. 보고픈 마음에 사진첩을 뒤져봤는데 엄마랑 찍은 사진도 별로 없고, 우리 집 소파에 담요 덮고 낮잠 주무시는 사진 하나 있더라고요. 혼자 찾아보고 가족들 몰래 울고... 덕분에 시리고 허전한 마음 따뜻함으로 가득 채우는 하루가 되었어요."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짧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서러움, 그리움, 고마움, 사무침, 보고픔... 온정 어린 마음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이름을 한 어떤 사람이 올리는 글을 보시며 하트를 눌렀을 그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곱고 예쁜 막내딸이라 더 많이 보고 싶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고, 더 많이 아껴주고 싶으셨을 어머니 이이순 여사님,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 반도 돌려드리지 못했다 자책하시며 마음 아팠던 따님께서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 이이순, 그 어머니의 이름에 매일 하트를 드렸나 봅니다. 그리고 이분께서 제가 만든 간장게장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게장을 만드는 동안은 늘 세상에 아직 내가 쓸모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힘들어도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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