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 가득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온기마저 마른 새벽을 지나
시간을 가르고 오롯이 너에게 간다.
책장 서랍 속 깊이 넣어둔 하이얀 종이
오래 묵은 까만 볼펜 한 자루
이러한 기분으로 마주하게 될 줄 몰랐다.
여백 없이 써내려가다 이내 후회하고 덮기를 몇 번.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띄우는 이 시를
후회하지 않으련다.
몇 번의 망설임으로 너를 놓친 걸 후회하기에.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쓰는 건 욕심이고
감추는 말이 있다면 그건 너에 대한 기만일 것이다.
끝모를 숱한 고뇌로 잠못 이루던 나날들
바닥을 기던 나를 받아준 너이기에...
나는 다시금 오래된 망상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가지 너에게 다짐하는 건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을 이기고 혹은 뿌리치고
오롯이 너에게 써내려간다는 것이다.
펜을 잡고 돌아본 주위의 공기는
어느새 바뀌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모를 나와 너 사이의
변화의 징조일는지도.
주저앉아 울던 날들도 일어서면
바로 어제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가라 한다고 해서 가지 않겠다.
멈추라 해도 가보려 한다.
이제 그 누구라도 내 등을 떠민다면
더 멀리 가라는 응원의 손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