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신입일 때 동아리 선배로 알게 된 미영 선배는 흔히들 말하는 여신이었다. 위로는 선배들부터 복학생 오빠들과 아래로는 타학교 남자 후배들까지많은 이들의 첫사랑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대시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가 대학 졸업 때까지 누구와 교제했다는 소문은 단 한 번 없었다.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1년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런 전설의 미영 선배가 졸업한 후 취직한 자기 회사에 한 학년 선배인 한인규 선배를 꽂아주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괴소문이 돌았던 게 유일한 연애 소식이었다. 두 사람 다 부인하지 않았던 이 소식이 괴소문이라 할만한 이유인즉 한 팀장님은 사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긴 하나,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얼굴도 그다지....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여신 미영 선배와 비교했을 땐 좀많이 쪼들린다고 해야 할까?
뭐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합디다. 미안합니다, 팀장님.
내가 미영 선배의 호출을 받고 달려간 곳은 회사 사무실 옥상이었다.
"소영아, 부탁 하나만 할게."
그러고... 갑자기 미영 선배가... 울었다. 그 순간 또르르 흐르는 눈물마저 어찌나 예쁜지 마치 진주알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이 저리도 예쁠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앗 정신 차려 윤소영!
그리고 지금 내 손에 쥐어진 편지와 선물 포장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가시방석이었다. 이걸 왜 내게 전해달라 한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진주알 눈물로 하는 부탁을 내칠 수 없어 결국 받아와 버렸다. 인규 선배를 만나서 전달하는 것이 오늘 내 임무이다. 아~ 춘향이와 몽룡이 사이에 낀 향단이 같은 이 심정, 향단이 마음이 이랬을까? 사실 미영 선배와 같이 있는 그 많은 순간 모두 내 본의 아니게 향단이 노릇을 해야 했던 적이 많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도 낯설지 않지만, 이제라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여야 하지 않을까? 이쁘면 다냐~
갑자기 현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향단이를 좋아라 해주는 현수, 그는 정녕 자원봉사자였던 것일까? 그 애의 얼굴에 광채가 번득이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오늘 정신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한다.
"이걸 니가 왜 받아와. 돌려줘."
인규 선배가 편지와 선물상자를 내팽개치듯 내게 안기고 휙 가버렸다. 엉겁결에 내가 다시 받아왔는데, 정신이 돌아와 보니 아~ 나~ 화가 났다.
"다들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만만해~~~"
그때 메모 같은 종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노래 : 김연우
지운줄 알았어 너의 기억들을
친구들 함께 모여 술에 취한 밤
네 생각에 난 힘들곤 해
그런 채 살았어 늘 혼자였잖아
한때는 널 구원이라 믿었었어
멀어지기 전엔...
그것만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 봐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
아프진 않니? 많이 걱정돼
행복하겠지만 너를 위해 기도할게
기억해 다른 사람 만나도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인규 오빠. 그동안 고마웠어요. 좋은 사람 만나요. 미영.
미영 선배와 인규 선배가... 헤어졌다!
만나는 건 못 봤는데 이별을 직관하다니.
오 마이갓~~!
근데 왜 내 주말이 이 두 사람 때문에 싱숭생숭 되어야 하는가?
에필로그
*슬기로운 향단이 생활
1. 미영 선배가 어려운 부탁 미안하다며 '투썸플레이스 쇼콜라 피스 + 아메리카노" 쿠폰을 선물해 주었다. 초콜릿 중독자로 너무 유명해서 종종 이런 선물을 받곤 하는데, 너무 좋아~~
2. 인규 선배가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며 전에 내가 갖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공구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뭐지? 개이득~ ㅎㅎ
3. 대학교를 다닐 때 미영 선배와 다니는 것을 본 많은 남정네들이 내게 저분은 어느 과에 뉘신지 꼭 뒤에서 몰래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아~ 갑자기 목이 마르네. 콜라 한 잔 마시면 저 여인의 과가 생각날 것 같은데~~" 하면서 맛있는 걸 얻어먹곤 했다. 물론 정보는 "과" 정도만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