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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2025년 1월 3일. <두근거리다>

다시 쓰는 결혼 일기.

by 재섭이네수산

"면차가 나잖아. 그건 실리콘 때문이 아니야!"

무슨 일인지 팀장님이 아침부터 날이 서있었다. 평소엔 아무리 기분이 안 좋다가도 우리들의 실없는 농담 몇 마디면 풀리곤 했는데, 오늘은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쭈욱~ 싸하다.

"팀장님, 점심 맛있는 거 드실래요?"

물론, 이 말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도 맞추지 않고 휙 지나쳐 가더니, 다른 직원분께 "미안한데, 점심식사들 해요.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웅크려졌다. 에잇!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은 그래서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눈치 보인다 상사들아!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한 팀장님 저러는 거 미영 언니한테 차여서 그런 거 아냐?"

"차였다고?"

"너도 몰랐지? 아침에 미영 언니 디자인 팀으로 발령 났더라."

"그럼 본사로 가는 거잖아. 머얼리~"

"우리 팀장님, 가여워라."

"짜증 내는 거 이해해 주게쓰~"

직원들끼리 밥을 먹다 나온 이야기였다.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을 모아 앞으로의 우리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여야만 했다.


한 팀장님의 여자친구라고 알려진 미영 언니는 정말 정말 예쁘다. 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라 연예인급으로 예쁘기 때문에 한 팀장님이 엄청 쫓아다녀서 결국 연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사자 두 분 모두 이 소문을 알면서도 시인한 적도 부인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냥 우리끼리는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다 믿고 있는 셈인데, 미영 언니의 전근과 맞물려 한 팀장님의 화남이 겹쳐진 오늘, 두 사람 사이를 확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사 후 복귀하는 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이사를 가느냐고 말이다. 그 말에 현수와 집을 보던 그날이 떠올랐다. 부동산 중개인 분께서 "신혼부부 살 집으로는 조금 좁지 않을까요?"라고 넘겨짚어 말씀하시기에 나는 "아 저 혼자 살 거라서 괜찮아요." 했는데, 현수가 갑자기 "저희 잘 어울리죠?" 하는 게 아닌가. 쓸데없는 소리에 내가 이를 악물고 현수의 발을 팍 밟았고, 현수가 아악~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중개인 분께서 깜짝 놀라셨더랬다.


"그 집 세입자가 나가는 대로 들어가기로 해서 아직 날짜가 정해진 건 아니야."

"눈 비 안 오는 좋은 날 잡아서 이사 가자. 아차 간장게장 보내줄게."

"네."

사실 나는 간장게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엄마가 보내준다고 하시는 간장게장을 거절하지 않는 이유는 간장게장 귀신인 한 팀장님에게 웃돈 얹어서 팔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날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따놓은 당상이다. ㅎㅎ 그리고 어떻게 아셨는지 내 소개팅 얘기를 넌지시 물어보셨다.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한 사안이었을 것 같다. 너무 기대하시지 않도록 나쁘지 않았다고만 말씀드렸다.


엄마는 여타 그 시대 어머니들처럼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을 많이 가지고 계신다. 그 인생, 참으로 아프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꼭 연애를 해서 나와 잘 맞는 남자를 만나 되도록이면 빨리 가정을 꾸려서 안정된 삶을 살게 되기를 무척 바라셨다. 그래서 이 소개팅에 관심을 두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연하도 괜찮다." 그러시는 거다. "무슨 말씀이세요?" 놀라 물었다. "전군 같은 사람이면 나는 네가 연하랑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아~ 그 녀석. 어쩌다 만난 현수의 살가움을 맛보신 엄마는 우리 사이를 응원하고 계신다. "엄마~ 전군은 놓아주기로 했어. 어린 녀석이 성격 드러운 누나 만나면 그 인생이 너무 불쌍하잖아. 그치?" 엄마는 "우리 딸이 좀 싸가지가 없긴 하지" 하고 인정을 해버리신다.


1월 3일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팀장님의 기분 탓인지 일이 순조로이 잘 진행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서도, 저녁 8시 퇴근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내일이 주말이지만 우리는 어제 화스너 사건 때문에 늦어진 공사 기간을 채우기 위해 자진해서 출근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여전히 싸한 한 팀장님의 차를 타기 너무 무서워서 알아서 도망 나와 오랜만에 전철을 탔다. 그리고 그 전철 안에서 우연히 이지형, 그를 만났다.

"지형 씨? 우리 우연히 세 번째 만남 아닌가요?"

반가운 인사는 내가 먼저 건넸다. 나의 실없는 농담에 그가 또 피식 웃었다. 그리곤 진지하게 "우연히는 빼야죠." 한다.

"아~ 정정합니다! 우리 두 번은 약속하고 만나고 한 번은 우연히 만난 사이 아닌가요?"

"음... 소영 씨는 오늘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아~ 뭐지...? 갑자기 훅 들어오시는 이 공격! 노처녀 가슴이 콩콩 아니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잖아.




에필로그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냉장고를 열어 둔 채로 한겨울에 찬물을 들이켰다. 이 두근거림은 지형 씨의 돌발 고백 때문만이 아니었다. 미영 선배가 내일 만나자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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