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하는 옥이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남편 될 사람의 나이가 자신보다 18살이나 많고 애딸린 이혼남이라 교외에서 가족 친지들만 모시고 조용하게 하기로 했다며 친구들은 초대하지 않는다고 미안해 했다. 아쉽지만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우리가 함께였던 어릴 때 생각이 문득 났다. 동네 친구들 중 가장 통통했던 옥이, 외모에 신경 많이 쓰던 영미, 운동 신경 좀 좋던 내가 동갑내기 세또래였다. 옥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우리 동네는 역을 끼고 있어 넓디 넓은 철길이 있었다. 사실 철길을 건너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주 놀이터인 뒷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또하나의 놀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철길을 질러가기 위해서는 시멘트 담벼락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통통했던 옥이는 운동신경이 조금 둔해 그 담벼락을 잘 넘지를 못했다. 수시로 다니던 곳이라 7명 가까이 되는 동네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담벼락을 뛰어넘을 때 옥이는 번번히 담벼락에 매달려 항상 나를 불렀고, 그러면 내가 도와주어 넘어오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무리 애절하게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며 내 이름을 불러도 이미 철길을 건너 뒷산으로 이동한 나는 다시 돌아가 옥이를 구해올 마음이 1도 없었다. 어제 정신이 아픈 언니와의 싸움에서 날 배신한 일이 생각나기도 해서 큰 소리로 "오늘은 집에 가라 옥이야~" 했는데, 옥이는 그날따라 분했는지 "엄마한테 다 이를거야~" 엄포를 놓고 돌아갔다. 설마 이르겠어 했는데 진짜로 1분도 안되어 자기 엄마를 데리고 왔다. 느려터진 줄만 알았더니 저럴 때는 겁나게 날랬다. 무서운 옥이~! 뒷산을 타고 있는 우리에게 옥이 엄마가 "너희들 거기서 뭐하니? 다 오늘 혼날 줄 알아~" 하셨다. 큰일이다! 그 날 우리 엄마도 우리가 하고 다니는 위험한 짓거리를 알게 되어 다시는 철길로 다니지 말라는 큰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내가 옥이의 담벼락 넘기를 도와주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 약간 정신이 안 좋은 언니가 있었는데, 가끔 화가 나면 연탄집게를 들고 죽인다며 막 쫓아오고, 확 물어버릴꺼야~ 하고선 진짜로 문다거나 하는 위험한 언니였다. 철길 사건 전날 옥이와 놀려고 옥이 집앞으로 갔는데, 옥이와 그 언니가 한 판 붙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옥이 편을 들었다가 불똥이 나에게 튀어 언니가 갑자기 나를 물어버리겠다며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언니를 뿌리치고 도망쳤다. 그런데 이 언니가 무서운 속도로 막 쫓아오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잡히면 물려 죽는다는 큰 위험을 감지하고 살기 위해 미친듯이 도망쳤다. 한참을 동네를 몇바퀴 빙빙 돌다가 지친 그 언니가 집에 들어가고 나서야 생사의 뜀박질이 끝이 났는데, 이 싸움의 원인은 분명 옥이였는데 어째서 옥이는 사라지고 나만 남아서 그 언니와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나는 옥이 집앞으로 가서 "옥아~" 불렀다. 생사를 오락가락한 나를 본 옥이가 태연하게 하는 말
"이제 다 싸웠어?" 그러면서 뭘 먹으면서 나오는데,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화가 뻗쳐서
"야~ 누구 때문에 내가 목숨 걸고 싸웠는데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당분간 옥이에게 삐져있겠다 했는데, 철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무튼 그랬던 옥이가 결혼을 했다. 강원도 속초로 신혼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먼발치에서 옛 추억을 곱씹으며 그녀의 행복을 빈다.
에필로그
나 윤소영의 결혼은 누구와 하면 좋을까?
1. 한인규 : 2학년 선배, 복돌이일 때 만난 키작고 성실한 남자
2. 이지형 : 1월 1일 소개팅에서 만난 잘생기고 말없는 동갑내기 남자
3. 전현수 : 2살 어린 후배. 끊임없는 플러팅 중이지만 동생 친구라 일단 보류 중.
일요일인데 뭐하느냐고 이 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형씨는 영화 티켓이 생겼다고 하고, 현수는 맛집 예약을 해두었다고 하고, 인규 선배는 같이 노래방이나 갈래? 한다.
지형씨가 보자고 하는 영화는 이미 내가 본 영화이고, 현수가 예약한 맛집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인규 선배는 미영 선배와 이별한지 얼마되지 않아 불쌍하고,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