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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연애의 두 가지 얼굴, 달콤 그리고 배신>

다시 쓰는 결혼 일기 - 1월 16일 자

by 재섭이네수산

연애는 그저 달콤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며칠도 되지 않아 나는 현수와의 전쟁을 경험하였고, 한 번의 다툼은 마치 이별의 예고편인 것만 같았다. 사실 연애라는 것을 이 나이 먹어 처음 해보는 것이라 서툴겠지만 자신이 없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자신이 없어졌다.


라면으로 해장한 속이지만 대충 그렇게 정리하고, 오늘은 업무상 군청에 계신 주무관님을 만나기 위해 군청으로 나섰다. 좀 일찍 도착해서 딱 오전 9시가 되자마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누빈 잠바를 입으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냅다 유리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약간은 불편한 걸음으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서 유리문을 팍 밀고 들어가셨다. 뒤따라 들어가는 내가 보았을 때도 '나 몹시 화났음' 하는 걸음걸이와 상대를 알 수 없는 허공의 삿대질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갑자기 뒤따르는 내가 신경에 거슬렸는지 할머니께서

"뭘 봐요?"

신경질적인 말투와 째려보는 듯한 눈총으로 말씀하셨다.

"네?"

"왜 날 따라오는 거야?"

"죄송합니다만 할머니를 쳐다보지 않았고 따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해를 풀기 위해 제가 먼저 가도 될까요?"

"흥~!"

할머니는 내 말을 듣지도 않으시고 민원실로 직행하셨다. 내가 가야 할 곳과 같았다.


할머니는 개선장군마냥 민원실 문을 팍 밀고 들어서더니

"한유리~ 네 이 년~!"

한유리? 이런. 내가 만나려고 하는 주무관님이셨다.

"무슨 일이세요?"

어찌나 기세등등하시고 힘도 세신지 막아서는 다른 남자 직원분도 밀치시고 한유리 주무관님을 한 번에 찾으시더니 머리카락을 움켜쥐셨다. 나는 달려가 할머니를 붙잡고, 주무관님 머리채를 움켜잡은 할머니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드렸다.

"놔~ 놓으라고"

할머니의 목청이 군청 민원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여자 중에서도 힘이 정말 센 편이라 할머니가 아무리 난리를 치셔도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지 못하셨다. 결국 다른 직원분들까지 가세해 할머니를 간신히 소파에 앉히고 진정을 시켰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분께 전화를 하셨다.


"미안해, 아이고 미안하다 아가. 나는 그 금붙이를 네가 가져간 줄 알고. 승우 여자친구가 가져갔다길래."

기세등등한 할머니는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온순한 할머니로 돌변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했음을 사과하시고 또 사과하셨다. 한유리 주무관님은 자기가 힘들 텐데도 나를 먼저 걱정해 주었다. 원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심성이 참 고운 아가씨였다.

"놀라셨죠?"

"아 많이 놀랐네요. 근데 주무관님 괜찮으세요?"

그때였다. 한유리 주무관님의 남자친구로 보이시는 분이 찾아오셨다.

"유리야. 괜찮아?"

걱정 어린 말투와 포옹.

"아 오빠, 난 괜찮아."

그러더니 한유리 주무관님이 울기 시작했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유리야, 진정해. 오빠가 유리 많이 사랑한다. 알지?"

저것이야 말로 연애의 정석, 연애의 달콤함 아닐까? 한창 현수와 싸움 중이던 나는 그 와중에도 부러움이 몰려왔다. 두 사람의 온전한 시간을 위하여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워드리려고 화장실로 갔다. 얼마나 있다가 들어가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한유리 주무관님의 남자친구분이 전화를 받으며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지금 들어가면 되겠구나.' 나는 발길을 옮기다 기막힌 통화의 내용을 듣고야 말았다.

"우리 할머니가 착각하셨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니 머리털 뽑힐 뻔했어. 자기야, 안 들키게 잘 가져갔어야지. 아휴 우는 애 달래느라 아주 진뺐다. 나도. 자기야~ 사랑해."

이건 빼박 양다리였다. 그리고 추측하건대 금붙이는 다른 승우 여자친구가 훔쳐간 듯하고, 그걸 한유리 주무관에게 덮어씌운 것 같다. 그러고서는 모르는 척 와서 위로해 주는 저 뻔뻔함에 나는 내 일도 아닌데 너무 소름이 끼쳤다.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한유리 주무관님에게 말해주어야 할까?'


에필로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양희은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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