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아프니까 갑자기 혼자 가는 길이 외롭다.>

다시 쓰는 결혼 일기 - 1월 21일 자

by 재섭이네수산

나는 집에 들어와 간단히 씻은 뒤 침대에 누우며 인규 선배에게 아프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부탁을 했다. 콧물이 계속 나오니까 갑 티슈와 쓰레기통을 가까이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오케이 하면서 갖다주었다. 오호~ 이럴 때 부려먹자. 비타민C를 섭취해야 하니까 유기농 레몬즙 한 포를 탄산수에 타서 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군말 없이 타서 가지고 와주었다.

"먹여도 줄까?"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더 부탁하면 안 되겠다는 쎄한 느낌이 왔다.

"아니, 충분히 고마워."

"죽은 먹었지?"

엊그제 문 앞에 놓여있던 죽이 인규 선배가 보내준 죽이었구나. 이제 알았다.

"응. 고마워."

"고맙긴. 16,000원이던가? 입금해라."

그럼 그렇지.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마치 엄마처럼 내 방에 흐트러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 주고, 능숙하게 세탁기도 돌려주는 고마운 선배다.

"이런 애를 두고 가려니 발길이 안 떨어지네."

"내일 가?"

"응. 운동도 하고. 잘 챙겨 먹고. 나 간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로 인규 선배는 떠났다. 7년간 떨어진 적이 없는 선배였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지금 눈물이 나는 것은 아직 낫지 않은 감기 때문이리라.


꿈을 꿨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누군가가 서 있었다. 가만히 자세히 보니 중학교 때 친구 순영이었다. 나는 너무 슬퍼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신랑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순영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랑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었다. 현수였다. 이상하다. 현수가 순영이랑 결혼을 한다고? 자세히 보니 지형 씨였다. 어 아니네. 지형 씨였네. 그리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인규 선배였다. 나는 친구 결혼식에서 나 혼자 펑펑 울고 있었다. 저 자린 내 자리였어야 해 하며 말이다. 아 정말 개꿈이다.


며칠 전에 순영이가 오늘 결혼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파서 참석하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순영의 남편의 얼굴이 퍽이나 너무 궁금했나 보다. 그냥 아는 남자 얼굴은 다 갖다 붙여놓는 이 미천한 상상력. 그리고 그 턱시도 입은 남자 옆에 내가 있었어야 한다는 후회는 실제 내 마음이었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


아프니까 더 그렇다. 코 풀 휴지 하나 챙겨줄 사람 없어 몸을 질질 끌고 가 간신히 티슈를 뽑아 들고 선 생각했다. 외롭다.

뜨끈한 국물 한 사발 들이키고 싶은데 주문할 힘도 없고, 숟가락 들 기력도 없고, 내 말 들어줄 사람도 없네. 정말 외롭다.

나는 지금 아프고,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우는 거지 인규 선배가 지방 간다고 해서 우는 게 아니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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