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로소득은 0입니다.

<그럼에도 좋아라 하는 글이라 쓰기만 했는데 부자라도 된 것 같아.>

by 재섭이네수산

사색을 좋아했어.

오래 생각을 하다 보면 알잖아. 굉장히 머리가 복잡해지거든.

그러면 복잡한 생각들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싶어져.

그래서 혼자만의 생각을 쓰는 일기장을 만들었지.

생각이 정돈되어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글은 누군가에게 들키면 부끄러운 것들로 풍성했어.

그래서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같은 일기장 떠다닐까봐 열쇠를 달기도 했었지.

누가 볼까봐 단 거 아님! ^^


매일 상상하고 망상하고 고뇌하고 번민하고

그걸 정리하기 위해 쓰는 글이

돈을 버는 수단 즉 직업으로도 있더라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살고 싶었지.

그러나 나는 알아.

내가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좇아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다면?

나는 무지하게 배가 고플 거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조기 포기!

그래서 나는 글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어.


누군가의 잡념이란 그냥 들어주기도 힘든데

돈까지 내며 읽어주는 기적 같은 일이 어디 있겠어?

있긴 하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문호들의 글을 봐.

정말 고민 많이 하시더라.

그런데 우아해. 고급져.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글들은 시대를 초월하고

인종과 지역과 국적을 초월하고

공간마저 초월하여 우주에 가더라도 공감을 일으킬 거야.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문구를 써내고

광고판을 수놓는 활기찬 글들을 만들어내는 언금술사


지극히 평범한 내가? 어림없는 소리!


그러나 지금 나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어.

대문호를 꿈꾸는 건 아니야.


글로소득이라는 말을 반백살에 처음 들었어.

어머~ 글쓰기로 부자가 될 수 있다잖아.

어떻게?

잘 팔리는 글을 쓰면 된다는데?

대문호와 같은 말이지만 또 다른 말이지?

내 글로소득은 0이야. ^^


그런데 어쩌지? 나 이미 부자가 된 것 같아.

지금 이 시간만큼은

나 혼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마음껏

구애받지 않고 써 내려갈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어릴 적 자유로웠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상상,

지금 이 시간에 나를 미치게 하는 어려움들을 이겨내는 상상,

나를 괴롭히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상상,

누가 듣고 있지 않아도 쓸 수는 있으니까.


여전히 내 글은 일기장이야 뭐야~

sticker sticker



작문을 통해

미용에 들어가는 비용도 벌어뒀어.

좋아하는 글을 쓰니까 엔돌핀이 나오는지 혼자 미소 짓고 있더라고.

젊어지겠지?


다른 운동이 필요 없어졌어.

제대로 된 글을 쓰려다 보니 수정하고 수정하고

타자 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래서 손놀림과 두뇌 회전이 빨라졌거든.

치매 걱정은 당분간 안 해도 될 것 같아.


일 외에는 글 쓰는 시간도 빠듯하니까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어.

외출도 못해.

그래서 신발도 안 닳고 외출복도 필요 없어지고 외식도 줄어들고 술값도 줄어들어.

아차~ 취미생활에 들어가는 비용들도 안 쓰게 되네.

글을 썼더니 돈이 들어오네~~ 기적의 논리인가? ^^


아~ 참말로 나란 사람,

글로소득은 0일지라도

이미 삶이 넉넉한 부자가 된 것만 같아.




가난하다고 왜 시를 못 쓰겠는가? 부유하다고 왜 시를 안 쓰겠는가?

'가난'하면 떠오르는 시 한 편 남겨야겠다.

오래지 않은 전에 작고하신 시인님께서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써주신 거래.

교과서에 나왔고 시험 문제로 자주 출제.

그러나 좋아했어.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 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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