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결혼 일기 ~ 1월 23일 자
새로운 팀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그러나 우리 팀으로 오시자 마자 스스로 그 명성에 먹칠하는 일을 일으키셨으니, 일명 다 된 밥에 코빠트리기였다.
계약서만 작성하면 되는 거였다. 새 팀장님은 미팅 전에 자기가 무언가 확인을 해야 한다고 고객님께 굳이 전화를 하셨다. 처음부터 회사 차원에서 착수금은 계약한 뒤 며칠 뒤에 받기로 결정되어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팀장님께서는 고객님께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받고 시작하는 게 원칙이라고 착수금을 준비해 달라고 하셨다. 그러자 고객님께서는 자기를 의심하는 거냐고 무척 불쾌해하시면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셨다. 그제야 인지를 한 팀장님! 그냥 죄송하다 하셨거나 본인이 막 인수인계를 받아 숙지를 잘 못한 불찰이다 하면 끝날 일을, 다시금 원래 계약금 일부를 받고 시작하는 게 원칙이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시는 바람에 고객님께서 전화를 끊어버리시는 사태가 발발했던 것이다. 아니 언변의 황제시라더니... 어쩐다, 결국 계약은 파기되었고, 우리는 졸지에 스케줄이 날아가버렸다. 회사는 손실을 입었고, 새 팀장님은 새됐다. 이게 며칠 전 일이라 덕분에 나는 감기에 걸린 김에 푹 쉬었지만 말이다.
말이란 것의 위험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왜냐하면 스케줄이 빈 탓에 졸지에 나는 일일 영업 사원이 되어야만 했고, 하필 현수가 있는 학교로 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대학교에서 꼭 마주치리란 법은 없지만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현수를 정문에서 맞닥뜨렸다.
죽으란 법은 없다. 이길 수 없을 때 쓰는 비장의 무기, 삼십육계 줄행랑,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잡혔다.
"따라오지 마."
"누나."
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며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현수가 내 손을 잡았다.
"누나는 나를 사랑하긴 했어?"
"몰라."
모르겠다. 정말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현수를 사랑하긴 했을까? 그의 바람을 보는 순간 칼 같이 잘라지는 마음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도 있었다고 하자.
지형 씨와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린 후 내 스스로 보류시킨 상태이다. 이대로 끝을 내자는 게 아니라 조금 두려워 물러서서 머뭇거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머뭇대다 놓치기 전에, 전진하여 끝까지 가보자 싶었다.
퇴근길에 지형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제 같이 영화 한 편 보자고 말이다. 숫자 1이 사라졌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이것은 거절. 기회를 놓쳤구나.
씁쓸하던 찰나,
문 앞에 서있는 그를 보았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해바라기 꽃을 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