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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핸드폰 없는 하루의 시작>

다시 쓰는 결혼 일기 - 1월 25일 자

by 재섭이네수산

오늘 오후 영상의 기온이 마음에도 옮겨왔나 보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같은 그 무언가가 허파에 슬슬 스며들어와 자꾸만 실실 웃게 되는 것이, 상당히 혼란스럽다. 이건 마치... 실성?


약간의 실성으로 인해 긴장을 늦췄는지 또 사고가 일어났다. 아니 사고를 일으켰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차에 오름 -> 호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 탈출 후 바퀴 아래로 추락 ->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차 출발 -> 바퀴에 깔린 핸드폰이 와사삭 -> 핸드폰, 그 자리에서 사망.


나의 감정 상태는 이러하다.

처음엔 안 돼~ 울부짖다 -> 아 이 기회에 새 핸드폰 사지 뭐~ 좋아했다 -> 새 핸드폰 가격을 보고 뇌정지. -> 고치지 뭐 그러면서 다시 웃었다가 -> 오늘은 아주 긴 연휴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후 망연자실. -> 핸드폰이 없는 한 주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한 절규.


다시금 나는 행복 총량의 법칙이 실존한다 믿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불행해지기 싫었고, 불행해지기 싫어서 행복하기 싫었다. 행복할수록 작은 불행에도 크게 불행해지니까.


지형 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 전화가 망가졌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흡사 실성한 사람처럼 흐흐흐흐흐, 진짜 흐를 다섯 번 하는 웃음을 웃었다. 진짜 그렇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점점 미쳐가는 걸 거야. 어제 너무 행복했었나 봐. 그래서 지금 많이 불행하다."

핸드폰의 사망이 이처럼 사람을 몹시도 불안정한 인간으로 망가뜨릴 수 있구나. 몸서리 쳐지게 온몸으로 불행을 맞닥뜨리고 있을 무렵 어제 너무 행복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으나, 후회는 늘 일찍 해도 늦은 법.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 없다고 이때 어제 덜 행복할 걸 이라는 후회라도 하고 나니 그나마 어제 행복해서 다행이다 싶어 덜 후회가 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시나브로 실성이 점입가경이 되었다.


일단 차비가 문제였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걷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핸드폰의 삼성페이로 결제하던 걸 못하게 되었으니 누구의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했다. 제일 가까이에 사는 그분. 귀에서 피가 나도록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시는 언변의 황제 황팀장님의 차를 얻어 탔다. 5분이었지만 체감 시간은 50분. 그냥 걸을 걸.


늦은 밤까지 한 통의 전화도 한 통의 알람도 없으니 적막이 친구야~ 하고 밀착해 온다. 누구 없어요~ 외치고 싶은 그때 해바라기 꽃이 방긋 웃고 있었다. 응~ 알았어. 잠이나 잘게. 근데, 아침 알람은 뭘로 맞춘다? 걱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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