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결혼 일기 - 1월 26일 자
핸드폰이 없는데 알람은 뭘로 맞추나~ 고민하다, 일요일이니까 그냥 좀 늦게까지 자다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겠다~ 하고 만포쟁이로 잤다.
의외의 내 알람은 인규 선배였다. 일요일 아침부터 들리는 초인종 소리. 나는 초인종 소리가 이리도 급하게 들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끊임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
"야~ 실종이라도 된 줄 알았잖아. 왜 전화를 안 받아!"
오자마자 다짜고짜 짜증을 내는데 내가 더 짜증이 났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핸드폰 사망."
부고소식을 전했다. 인규 선배의 안도의 한숨 소리가 깊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선배가 내 아빠냐? 자기가 난리야."
"살아있었네. 그럼 눈꼽 떼고."
"잘건데 왜 떼?"
"아~ 그럼 또 침흘릴 거니까 침 닦으란 소리는 안할게."
"아이씨~"
"양말 먹었냐?"
"뭐라고?"
"일어나면 양치질부터 해라."
"꺼져. 겟아웃~!"
아침부터 나의 잠을 깨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약을 바짝 올려놓고 그렇게 구타유발자께서는 유유히 떠나가셨다. 나는 진짜 입냄새가 나나 싶어 동그랗게 오므린 손을 입쪽으로 가져가 얼굴에 바짝 붙인 다음 호오~ 하고 입김을 낸 뒤 깊게 들이마셨다.
"아... 욕할뻔. 고독한 스멜."
양치질이 급선무였다.
시간을 알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집에 변변한 시계 하나가 없었다. 이럴 땐 가야한다. 다이소로!
핸드폰이 없으니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찾아내야만 했다. "보자 보자~ 카드를 어디다 뒀더라~" 엄마들이나 한다는 리듬 섞인 혼잣말을 해가며 여기저기 뒤지다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엄마와 이모들, 즉 세 자매가 몇 년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누군가 잃어버리고 간 우산을 주워쓰곤 좋아라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늙었으나 해맑았다. 엄마가 이 사진을 나에게 주며 "나 죽으면 다른 건 다 버리고 이 사진만 가지고 있어"라고 말했다. 엄마의 화양연화였다. 엄마가 더 늙어 꼬부라지기 전에, 걷지 못할 무릎이 되기 전에, 아파서 누워만 있기 전에, 남은 건 엄마의 인공 척추 관절뿐이라며 붙잡고 회한의 눈물 흘리기 전에 보내드려야 한다 세 자매 여행. 나는 마치 떠나간 레트버틀러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말했던 스칼렛 오하라에 빙의 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내일은 없다. 지금 보내드려라." 라는 뜬금포 하루살이 결의를 날리다가, 그 전에 나 먼저 살고 보자 하며 뜨거운 커피를 들이켰다.
핸드폰이 없어졌을 뿐인데
모든 세계와의 단절.
그리고 밀려오는 고독감.
이러다 발이라도 헛디뎌 미끌어져 죽으면 고독사.
허리라도 다치면 전화가 없으니 119도 못 불러
저 혼자 고통속에 몸부림친다.
고통이 지나고 난 다음에 갑자기 밀려오는 허기와 배고픔.
전화기가 없어서 배달도 못 시켜, 허리가 나가서 요리도 못해.
밀려오는 공포. 두려움. 고통. 결국 슬픔.
남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순간 밀려오는 고독이라는 공포 속에 절실하게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남편이 있어야 한다!
핸드폰이 없어졌을 뿐인데 불현듯 남편이 있어야겠다 하는 생각의 파도가 마음을 철썩 철썩 때리고 있었다.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