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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콩가루 집안 만들 일 있어?>

함부로 아는 척 말기

by 재섭이네수산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명절이니까 떡을 사 오라는 엄마의 명령에 리모컨을 손에 들고 뒹굴거리느라 너무 바빴던 나는 "엄마, 나는 둘째야. 막내가 있는데 왜 내가 가야 하지?"라고 나름 논리적으로 말대꾸를 하였다. 그랬더니 재섭이네수산에서 10년째 해산물을 팔아오시던 이이순 여사님께서 더 논리적으로 말씀하시길 "여기서 떡 먹는 년은 너밖에 없는데? 가기 싫음 말아라."라고 더 논리적으로 나오시는 바람에 내가 희생하지요 하며 나는 마지못해 내 입에 넣을 떡을 사러 마룻바닥과 작별을 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떡집엘 갔다.


어떤 떡이 더 애타게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지 쫙 훑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내 옆에 바짝 다가오셨다.

"저기"

그러시며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셨다.

"저요?"

나를 여기 사장님으로 아신 건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희끄무리한 고물이 묻어있는 떡을 가리키시며

"이 떡은 제사상에 올라가나?"

라고 물으셨다.



사실 나는 떡을 좋아하지만 뭐 떡에 대해 개뿔이나 알고 좋아하는 게 아닌 무지한 그냥 손님일 뿐이었지만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께 쌀쌀맞게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그때부터 학생이지만 많이 굳어있고, 많이 부족한 데이터를 지닌 허접한 두뇌회로를 풀가동 하며, 내 머릿속에 떡에 관한 정보를 아웃풋 하려 애썼다.

할머니가 가리킨 떡을 먼저 살펴보았다. 가만히 보니까 노란 콩고물 시루떡 같더라. 이건 제사상에서 본 그 하얀 시루떡과 같은 종류가 아닐까? 가만히 짐작해 보다

"올라가는 거 맞아?" 채근하시는 할머니의 물음에 나는 황급히 대답을 올렸다.
"제사상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요."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 올라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올라갔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할머니께서도 내가 미심쩍었나 보다.
"여기 재료가 뭔지 읽어줄 수 있어?" 하셨다. 내가 큰소리로 "동부"라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할머니께서 버럭 화를 내셨다.

"동부? 이걸 제사상에 올린다고? 누굴 콩가루집안 만들 일 있어?"

혀까지 끌끌차며 역정을 내시고는 휭 가버리셨다. 하얀색에 가까운 노랑 콩고물이 동부라고 하는 콩을 갈아놓은 고물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할머니, 잘 들어보세요. 내가 확실하게 올라간다고 한 건 아니잖아요 할머니? 본 것 같다고 했지 봤다고 하지 않았잖아요, 할머니? 할머니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냥 가버리시는 건가요?


나는 혼자 속이 상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졸지에 콩가루집안 만드는 원흉쯤으로 오명을 쓰게 된 동부고물이 묻은 시루떡도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은 것이, 나라도 거두어주어 서로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어야겠다 싶어 두팩이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진짜 그 동부 시루떡을 제사상에 올리면 콩가루 집안 되는 건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컴퓨터라는 놈의 코빼기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검색이라는 것도, 지식인께 여쭤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굉장한 의문만 가득 남긴 채 나는 뜻에 없던 동부 시루떡을 가슴에 품고 막내 같은 둘째가 되어 총총 뛰어 신이 난 척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먹지 않는 시루떡을 이틀 만에 나 혼자 다 먹어치웠는데, 아니 어찌나 맛있는지, 내가 죽으면 내 제사상에는 이거나 올려달라고 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인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요새 제사상에는 생전에 조상님께서 좋아하시던 음식이면 케이크도 올리고 망고도 올리고 바나나도 올리고 스테이크도 올리고 낙지며 게장도 올린다고 하더라. 음~ 세상이 정말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변했군. 아~ 사실 이보다 더 세상이 변했다 싶은 건 제사를 안 지내는 곳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여자들만 괴롭다고 제사를 줄이고 며느리도 일 안 시키고 그러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대가 도래하였다. 반갑다 새 시대여~


오늘의 교훈.

함부로 친절하지 말자.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자.

내 제사상엔 동부시루떡을 올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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