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도리>
오늘 내 마음 가득 채우는 것은 친구가 어렵게 털어놓은 자신의 가족사였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 서로 관계를 맺고 산다고 해도 사생활은 지켜주자 싶었고, 그래서 서로 굳이 말하지 않는 가족에 관한 것들을 속속들이 묻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이야기는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친구의 친엄마는 친구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친엄마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을 하셨고, 친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할머니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새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자식이 둘이 있었고, 많이 어색한 첫만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새 엄마다, 이복동생이다 그런 생각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 남매, 친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친구 혼자만의 생각이었을른지도 모른다. 친구가 타지로 대학을 가며 뜸하게 집에 갔더니 다들 서먹하게 대하고, 집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러니 집에 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집에 나만 없으면 그냥 평범한 가정이구나.' 그래서 친구가 집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몇 년 뒤에는 거의 발길을 하지 않았는데, 뭐 연락조차 잘 오지 않았으니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편한가보다 싶을 즈음,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으로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갔는데,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배가 다른 형제이지만 친구가 명색이 장손인데 말이다. 모든 것들이 친구가 끼어들면 뭐가 틀어지는 집이 되니까 다들 친구를 반기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결혼까지 하고 아예 서로 연락 없이 지내던 세월이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휴대폰 가족할인을 받으려 가족관계증명서를 뗐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망신고 되어있더라고. 이미 2년 전에 말이다. 충격을 받은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데 마음이 헙헙한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그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저렸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많은 가족들이 친구에게 부고 소식조차 알려주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몇 년간 소식이 끊겼다 하나 연락처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가족 중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니... 아버지의 마지막도 보내주지 못한 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울었을까. 애써 담담하게 말하는 그였지만 그 안에 서러움이 묻어있었다. 친구는 자기는 이제 늙은 고아가 되었다며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눈물이 나왔다. 그 가족들은 꼭 그래야만 했을까?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혼자 속으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가족은 어떤 것이다 라는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그 먹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러할찐대 그 친구는 어떠할까...
"그래도 그렇지. 부고 소식은 알려 주는 게 인지상정아니야? 그 가족들이 너무 했다"며 내가 마구 화를 냈는데, 그렇게 상대가 화를 내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며 자기 가족 역성을 드는 게 일반적인데, 얼마나 그 가족들에게 실망을 했는지 친구는 "그러게 말이야" 하면서 그 이상의 말은 하지 못했다. 속으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술이 땡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