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자.
글쎄, 오늘 일을 하는 집에 계단으로 한 세 번을 왔다갔다 했나? 그때마다 나를 보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이 사라지도록 환하게 웃으시며 고운 목소리로 "어떻게 오셨어요?"하시는 할머니댁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사람을 잘 못 알아보시나 보다 생각했다가 아니지 싶었다. 그 표정과 말투는 정말 정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모양새였기에 나는 순간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치매신가?
동생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게 자신이 어떤 요양원에 처음 실습을 나갔을 때 얘기를 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유독 치매 걸리신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 중에 착한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동생이 오는 일주일 내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젊은 분이 너무 예쁘시네." 그렇게 인사를 하셨다고 했다. 치매라고 하면 다 화내고 던지고 그런 분을 떠올리는데 그 분은 항상 선량한 눈빛으로 매일 처음 뵙겠다고 하고, 예쁘다고 하셔서 처음엔 놀라다가 나중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고 했었다. 그게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내가 1층에서 이것 저것 하고 있는데 2층 할머니께서 테라스로 나오시더니 건조대에 빨래를 널면서 "아니, 그건 가만히 둬. 아니야. 놔두면 돼." 등등의 대화로 느껴지는 어투로 말씀을 하고 계셨다. 아무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셨다. 나는 분명 그분이 아프신 것이다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일하러 오셨어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하고 또 내게 인사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그냥 처음 뵌 사람처럼 밝게 웃으며 큰 목소리로 "네. 일하러 왔습니다. 이제 마치고 가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이고 수고가 많으셨어요. 조심히 가세요." 이렇게 아주 예의 바르게 말씀하시는데, 착한 치매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이겠다 싶었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그것을 늙는다고 표현한다.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다 포장하려 하지만 아무튼 늙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곱게 늙자.
그런 주의다.
아프시더라도 괴팍하지 않고 점잖게, 저렇게 남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처럼 곱게 늙고 싶다.
나보다 먼저 나이가 드실 엄마를 떠올리며, 어려운 길을 걸어오셨지만 강단있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맏이 엄마로써 남은 길을 곱게 그리고 덜 아프게 살아내시기를 두손 모아 바래보는 토요일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