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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산책

그래서 여기서 싸?

by 재섭이네수산

일요일 저녁이었다.

주말 저녁에 못해준 산책을 해주자며

오랫만에 두 사람이 같이 우리 노령견씨의 목에 리드줄을 매고 밖을 나섰다.

해가 뉘엿지는 저녁 6시 30분쯤이었다.


나오기 전부터 사실 나는 배가 살살 아팠다.

그래서 사실 화장실을 간 다음 산책을 나설까 했는데

이미 노령견씨 목에 목줄이 걸린 후라

후퇴할 수 없어 그냥 살살 걷다 들어오자

나 혼자 생각하며 나섰던 산책 길이었다.


미안하게도 일주일만에 나온 산책이다 보니 우리 노령견씨 상당히 신이났다.

바람을 맞으며 총총총총 걷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픈 배는 잠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 노령견씨가 배설을 하고

그것을 배변봉투에 담을 때였다.

너무 교감이 잘 되는 터였는지

나도 마려움을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배가 부글부글대며 어서 화장실로 발을 옮기기를

대장인지 소장인지 방광인지 모를 장기들이

마구마구 권유하는 외침을 강렬하게 뿜뿜하고 있었다.

부쩍 말이 없어진 내가 이상했는지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이

"우리가 나이가 더 들어도 이런 한적한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을까?"

스윗하게 말했다.

나도 스윗한 답을 하고 싶었다. 마음은 말이다.

그순간 나는 마음과 다르게 대답대신 본의 아니게 방구를 뽕뽀로뽕뽕~ 껴버렸다. �

앗~ 이제 남편에게 나는 백만년 놀림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자기가 들고 있던 강아지 배변봉투를 가만히 내게 건넸다.


속으로 나는 말했다.

그래서?

여기서 싸라고?

우리 강아지처럼?

씨씨티브이를 찾아보다가

참 강아지라면 좋겠다 싶게 배가 무지하게 아팠다.

"나 먼저 들어갈게. 괜찮지?"

남편은 손짓으로 가라고 손을 흔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상처만 남은 산책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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