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대학원 수업에서 친일파 처벌에 관한 테마를 가지고 토론을 하다가 한 친구가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친일파였어.
다행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위안부, 강제 징용에 직접적으로 앞장서지는 않았대.
하지만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편지도 보내고 많이 애쓴 것 같긴 해.
어렸을 때 다락방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쓴 편지를 우연히 읽었는데
더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 스스로 너무 부족하고 죄스럽다는 내용이었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실제로 문화이론 수업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토론하는 가운데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토론하는 내내 고민했어.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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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열혈 나치당원이었대.
다행히도 아이히만처럼 유대인 학살에 앞장서지는 않았지만 당시 증조할아버지가 히틀러를 만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서 들었는데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적잖이 애썼던 것 같아.
어렸을 때 우연히 증조할아버지가 히틀러에게 보내려고 써 놓은 글을 읽었는데 당시 당원들이 절대 권력자에게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 그 글을 읽으며 알게 됐고 너무 충격이었어.
우리 동기 8명 중 4명이 역사적으로 식민과 독재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온 그리스, 멕시코 (2명) 그리고 나 한국인이다. 식민의 역사를 잘 알기에 그 애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지 조금은 더 알 것 같았다.
가뿐 숨소리와 차분하려고 애쓰는 톤 다운된 목소리가 약간은 슬프게 들리기까지...
누렇게 바랜 고급스러운 종이에 만년필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구구절절한 증조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었을 어린 소녀가 오버랩되면서 심장이 두근거려서 혼났다.
동독에서 자라고 학창 시절을 보낸 튀링겐 출신인 주임 교수님은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너무나 고맙구나.
**야 조상의 잘못은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에도 어떤 형식으로든 행하거나 벌어진다면 문제겠지.
예를 들면 내 고향 튀링겐엔 36 퍼센트가 AfD 극우를 지지하고 있어.
이 세력은 점점 확장되어 주변 지역까지 허용되는 분위기야.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
우리는 계속해서 이 책의 테마인 악의 평범성, 법체계의 부적절성, '정상성'의 기초가 되는 가치 체계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위기(한국의 경우 경쟁포함)의 시대에 (타인, 세상에 대해) 생각 없이 사는 것을 평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물론 나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지만)(반대로 팬데믹으로 인한 디지털의 활성화로 인해) 무심함은 '선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외면해도 되는 하나의 핑계인가? 외면해도 되는가?
오늘날에도 '희생양' 정치는 정치적 논쟁을 어느 정도까지 가로막고 있을까?
현재 우리의 가치 체계는 무엇인가요? '정상'이란 무엇인가?
어떤 행동이 '정상'으로 간주되는가?
'정상'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행위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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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볍지 않은 테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비판이 아닌 혐오, 부와 1등이 우선순위가 된 피로 사회, 생각하기를 그만 둔 무관심이 '보통'이 되어버린 한국사회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