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1] 광주예술의전당 ‘제작극장’ 선언,

협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제도로 갈 수 있을까?

by Arete

광주예술의전당이 내년부터 ‘제작극장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획부터 무대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 관현악단 창단을 통해 자체 제작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연장이 단순히 ‘대관 공간’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방향은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드문 시도로서 주목할 만하다.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품격 있는 공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선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도가 협업 실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제작극장’이라는 이름이 합동무대나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되지 않으려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정책적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국공립예술단체들도 합동 기획공연이나 협업형 제작 실험을 시도해 왔다. 광주예술의전당 역시 오페라단·발레단·합창단 등 기존 예술단과의 협업을 전제로, 관현악단을 신설하고 절반 이상의 공연을 자체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지역 공연장이 창작 역량 축적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특히 매년 수억 원의 외부 단체 섭외 비용을 절감하고, 지역 프리랜서 음악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효과는 현실적으로도 매력적이다. 이 같은 실험적 시도가 앞으로 한국 공연예술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행 과정과 구조적 한계를 직시하지 않으면, 결국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일회성 행사나 합동무대에 머물 위험이 크다.


1. ‘레퍼토리’ 없는 제작극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제작극장은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레퍼토리 계획에서 출발한다. 한 해의 극장 방향성을 결정하는 모토가 설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작품 라인업과 제작 예산, 기술 스태프 운영, 배우·연주자의 고용계획까지 짜여진다. 그러나 현재 제안된 방식은 이미 짜여진 예술단의 연간 일정 사이에 협업을 끼워 넣는 수준에 머문다. 이는 무대극 제작의 지속성과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단발적 기획공연을 반복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2. 인력과 비용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케스트라 50명을 외부 섭외 대신 자체적으로 구성한다고 하지만, 그 예산을 기존 외부단체 섭외비에서 충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대극 제작에는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무대장치, 의상, 조명, 분장 등 수십 명의 기술 스태프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 이들을 ‘프로젝트 단위’로 불러 쓰는 방식은 제작극장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공연의 질적 완성도에도 한계가 생긴다. 결국 ‘상설 창작 시스템’이 아닌 ‘임시 협업 무대’에 머물게 된다.


3. 예술단의 일정 충돌과 설득의 난제

각 예술단은 이미 연간 공연일정과 행정적 의무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공연 협업을 추가한다면, 연습·상연·마케팅 일정은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단체의 근무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흡수하기도 어렵고, 공연 준비를 위한 충분한 리허설 확보도 쉽지 않다. 설득의 문제는 결국 노동조건과 행정제도의 문제가 된다. 단체 개별 설득을 넘어, 제도 차원에서 새로운 운영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4. 산으로 갈 위험: 합동무대와 지속가능 창작의 차이

합동무대는 단체 간 협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벤트성이다. 반면 제작극장이 지향하는 바는 지속 가능한 창작 무대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혼동할 경우, 정책은 번번이 ‘협업의 성과 발표회’로 귀결되고, 창작극장의 본질은 훼손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제작극장’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정책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

시즌제·레퍼토리 시스템 도입 - 광주예술의전당이 “내년 절반 이상 자체 기획·제작”을 공언했지만, 작품군을 무작위로 쌓아가는 방식이라면 ‘기획공연 나열’에 그친다. ‘연간 시즌제와 레퍼토리 계획’이 없다면 지속가능한 운영은 불가능하다.


전문 스태프와 예술노동자의 상시적 고용 - 관현악단 창단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대기술, 의상, 조명, 분장 등 필수 스태프를 프로젝트 단위로만 고용한다면 매 공연마다 품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작극장은 ‘상설 제작인력’을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제도적 성격을 갖는다.


노동시간·연습구조 개편 - 광주시립예술단체와 협업을 전제로 하지만, 각 단체의 기존 연간 일정에 협업을 얹는 방식으로는 충분한 리허설과 준비가 불가능하다. 단체별 ‘추가 업무’가 아니라, 극장 단위의 운영시간·연습구조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극장 단위 운영체제 구축 - 현재는 예술단별, 공연별로 운영이 분절되어 있다. 독일처럼 극장이 운영의 주체가 되고,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합창단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극장 중심의 운영체제를 확립해야만 ‘제작극장’이라는 명칭이 의미를 가진다.


실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제도로

광주예술의전당의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 방식대로라면 결국은 합동무대 이벤트를 반복하는 데 그칠 위험이 크다. 관현악단 창단과 예산 절감 효과를 강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제작극장’의 본질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제작극장은 하나의 공연장이 ‘기획–제작–상연’을 통합 관리하는 창작 중심 제도다. 따라서 정책은 단순한 협업이나 예산 효율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레퍼토리 기반의 시즌 운영, 상설 제작인력 고용, 제도적 운영체제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광주의 사례가 진정한 전환점이 되려면, ‘제작극장’이라는 이름값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선언은 지역 예술인과 시민에게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결국 또 다른 이벤트성 합동무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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