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야, 사랑해. 포포야, 미안해. 포포야, 잘가.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밤.
우리 포포가 하늘에 갔다.
하늘에서 가장 예쁜 별이 되었다.
생후 반년도 안 되어 두번이나 파양을 당했던 포포.
아기때부터 기관지, 피부, 다리 관절도 안 좋았다. 병원에서 4살인데 디스크 이상이 오는 것은 참 이상하다고 할 정도였다. 5일 전 처음으로 목 통증을 호소해서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약물 치료 중이었는데....어제 저녁 심한 목 통증으로 인한 쇼크사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우릴 보며 운이 참 안 좋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우리에게 와준 지 3년 5개월 18일만에
포포는 먼저 긴 여행을 갔다.
포포와 우리는 생후 6개월에 떨리는 첫만남을 가졌다. 포포는 우릴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뛰어와 와락 품에 안겼다.
그렇게 포포의 '형아'와 '누나'가 된 우리는 그날부터 매일 네 사진을 주고 받으며 덕질을 시작했고, 자기 전에도 몇 번씩 네 사진을 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참 행복했다.
처음 왔을 땐, 산책 하는 법도 마킹하는 법도 몰라 온 집안에 소변 실수를 했던 포포.
가장 아끼는 내 운동화 뒷축을 다 물어 뜯어놓은 사고뭉치 어린 시절 포포.
집에 도둑이 들어도 반겨줄 거라고 이야기 할 만큼 사람을 참 좋아했던 포포.
돌도 안 된 아기가 실수로 꼬리를 잡고 당겨도 아르릉 소리만 내고 입대지 않으려 꾹 참아주던 포포.
말티즈 중에 가장 예쁘고 착하다, 우리 동네 최강 귀요미다 노랠 불렀는데 떠나는 모습마저도 참 예뻤다.
130L 쓰레기 봉투를 사서 아직 뜯지도 않은 배변패드, 덴탈껌, 한번 쓴 레스트 케이지와 귀청소약 등을 모두 버렸다. 보면 마음이 무너져내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린 아이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 텅 빈 집안을 꽉 채워주는 녀석이 있어서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아직 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때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치 빠른 아이는 "포포 아파?"물으며 포포가 자주 숨어있던 거울 뒤를 힐끔 힐끔 쳐다본다.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포포 병원이라고 알려준 레스트 케이지를 향해 "포포야 아프지마. 잘 잤어? 포포야 아프지마." 하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엄마, 포포 어디 갔어? 포포 어디 있어?"하고 계속 물었다. 참던 눈물이 터져나오자마자 남편이 대신 말했다. "포포는 놀러갔어. 천국에 놀러 갔대."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천국? 나도 같이 놀러갈래."했다. 남편이 얼른 "안돼, 거긴 가면 안 돼." 했다. 저녁에도 포포가 어디갔냐고 물으며 또 한번 자기도 같이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안 찾다가도 엄마의 눈물을 보면 포포를 찾는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대충 알고 있는 것 같다.
아기를 등원시키고 우리 부부는 장례식장을 향했다.
장례식장 입구부터 이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제 밤 11시부터 시작된 이 악몽이 아침이 되면 깰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건만.
트렁크에서 상자에 담긴 포포를 꺼내는 순간 알았다.
"진짜구나. 꿈이면 이제 깨야되는데, 정말 우리 포포가 간 건가?"
울음이 터졌다. "말이 안되는데....이거 말이 안 되는데...."
염습을 마친 포포가 예쁜 수의를 입고 우리에게 왔다.
언제나 따듯한 포포인데, 포포의 얼굴이 너무 찼다.
미간을 긁어주면 그 손길이 시원해서 늘 "코코코코 극그극극" 소릴 내곤 했는데 숨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선분홍빛 혀는 검붉은색이 되어 옆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너무 갑작스레 가서 눈도 못 감았다. 맑고 예쁜 큰 눈이 여전히 반짝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빛나던 맑은 눈. 하얀 털은 여전히 부드럽다. 누나 셀프 미용 실력도 네 덕분에 많이 늘었는데....그동안 미용받느라 너도 고생많았지.
집에 유일한 막내였다가 새로운 혜성이 등장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사회성도 안 좋아졌지.
그런데도 포포는 그 모습 그대로 참 예쁘고, 너무 착했어. 언제나 네가 자랑스러웠어. 산책을 하면서, "오늘은 누가 포포 예쁘다고 안 해주시나?" 괜히 기대하며 의식하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
오늘 오전, 아주 작은 여러개의 구슬이 된 포포야.
오전 내내 장례식장에 있다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꺼풀이 퉁퉁 뿔어 튀어 나오고, 코와 입이 벌겋고 윗 입술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너무 슬퍼서 잘 걷지도 못 하겠는데, 그래도 배는 고프다. 남편과 평소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메뉴들을 주문했다. 오늘따라 사람이 너무 많고, 식당 안이 소음으로 가득 찼다. 다행스러웠다. 너무 현실 같아서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것이 두려워 카페도 갔다. 출산 하루 전, 최후의 만찬으로 픽 했던 최애 카페에서 최애 메뉴를 먹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게 이렇게 맛이 없었나? 맛이 변했나?'하며 겨우 먹다가 결국 남겼다.
차에 돌아가며 생각해보니 음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딱 하나 너무 소중한 그 하나가 빠져있었다. 소중한 그 하나.
아이가 잠든 뒤,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포포의 마지막 물건을 처리하러 분리수거장에 갔다. 산책을 하러 가는데,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 보던 밝기의 정도가 아니었다. 동방 박사가 보았던 별이 저렇게 밝고 컸을까?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별 하나를 마주했다.
포포와 매일 산책했던 공원을 가는데, 유난히 밝은 별이 여전히 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 별이 포포구나 알 수 있었다.
"포포야, 잘 올라갔어?이제 잘 도착했다고 알려주는거야? 너무 미안해. 불쌍한 우리 포포. 딱해라...딱해라...너무 아프게 가서 미안해. 형아가 키우던 강아지 거기 있어. 해리랑 친하게 지내. 해리한테 너가 제일 좋아하는 형아 냄새 많이 날 거야. 해리야, 우리 포포 잘 부탁해."
4년을 살던 집인데, 주방 용품이 어디있는지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벌써 몇번째 자꾸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종일 애꿏은 손톱을 나도 모르게 긁고 있다.
남편이 잠깐 쉬러 간 사이, 포포 물건을 재빨리 정리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포포 장난감 뭉치를 찾아내고 "이거 찾았는데, 여기 있었네." 하며 반가워했다.
남편이 버리자고 할까봐 가장 좋아하던 빨간색 똥 모양 장난감을 목줄과 함께 몰래 숨겨 놓았다.
마지막으로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집에 와서 멍하니 앉았다. 그렇게 다 버려놓고, 혹시나 포포 물건이 어디 없나 포포의 흔적이 나오면 반가울텐데...하며 찾게 된다.
그때, 책장에서 제주에서 구입한 엽서가 눈에 들어왔다. 포포는 종종 플라스틱 뚜껑, 두꺼운 종이가 있으면 손톱으로 박박 긁어 스크래치를 냈다. 그땐, 아끼는 엽서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혼냈었는데, 그 자국을 이렇게 그리워하며 쓰다듬게 될 줄 이야.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마음이 아려서 자꾸만 고개를 떨구게 된다.
가족들이 출근과 등원을 할 월요일, 텅빈 집이 벌써 두렵다.
몸이 너무 약했던 우리 포포는 그렇게 4년 1개월의 짧은 생을 살고 갔다.
그렇게 우리에게 과분한 사랑을 안겨주고 갔다.
수없이 많은 웃음과 기쁨과 사랑을 선물해주었다.
잠시 우리에게 천사가 다녀갔다.
천사가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