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절을 보내셨나요?
부모와 연을 끊고 난 뒤, 맞이하는 명절은.
해마다 명절이면 TV도, 라디오도 민족의 대축제 분위기를 고조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 첫아이를 출산하고 처음 맞이했던 명절.
부모와 연을 끊고 난 뒤, 명절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고 거리감이 들었다.
혹여나 그들이 집까지 찾아오지는 않을까, 지난번처럼 소리 지르며 문을 두드리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과 단란하게 보냈지만 결국 연휴 마지막날,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울음이 터졌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다른 친구들은 명절에 할머니, 할아버지집에 가는데 우리는 왜 안 가? 나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내가 겪어온 끔찍한 나의 가정사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젠 나의 가정을 살려야겠다. 내가 살아야겠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부모와의 끈질긴 악연을 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찬란하게 반짝이는 아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어여쁜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었는데, 우리 아이에게도 그 평범함은 물려줄 수가 없는 것일까?
명절이면 느꼈던 소외감, 외로움, 설움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순간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살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 아기가 비록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그 사랑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계속 출석은 했지만 교인으로 등록은 하지 않았던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얼마 후, 새로 등록한 교인들을 한자리에 초대한 환영식에서 우리는 참 따스한 환대를 받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교회의 높은 직분을 가진 한 부부가 다가오셔서 '우리가 아기를 봐줄 테니 편하게 식사하세요.' 하며 아기를 돌보아주셨다.
행사가 끝날 쯤엔 '같은 동네이니 앞으로 편하게 교류하고, 아기도 많이 봐줄 테니 둘이 데이트도 하고 와요. 우린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이런 귀여운 아가 보는 게 정말 즐거워요.'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지? 어떻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실 수 있지? 기도 응답일까? 싶었지만
내 욕심이 앞서는 것은 아닐까 싶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부의 호의는 계속되었다.
우리를 집에 초대해 식사를 준비해 주시고, 집에 좋은 식재료가 들어오면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조리를 해주셨다.
어느덧, 다가온 이번 명절.
우리는 아기와 함께 아침 식사에 초대받았다.
우리가 가족모임에 괜히 끼는 것 아닐까? 너무 실례되는 자리가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 가족인데 뭘.'
오히려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 끝에 찾아뵈었다.
떡국과 전, 잡채, 생선구이까지 가득 차려진 풍성한 명절상이 눈앞에 있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 아기는 눈이 마주치면 웃고, 새로운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아직 두 개뿐인 치아로 과일도 먹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아이를 비추는 환한 아침의 햇살이 참 따사로웠다.
명절의 끝, 어떤 명절을 보내셨나요?라고 묻는다면
이번 명절은 아이를 돌보며 바쁘게 지낸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지난 명절보다 꽤 많이 웃고 많이 사랑받고 많이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할 수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외로움과 설움이 울컥 밀려오는 순간에 이유를 묻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넓은 품을 내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