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당신에게.

집들이가 뭐길래

by 보드라워


오랜만에 친구들이 내 신혼집에 오기로 했다.

이사한 집에 처음 오는 친구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현관에 들어선 그들의 첫마디가

'청소가 참 잘 되어있다. 정말 깔끔하다. '라는 평가이길 바랐다.


친구들의 방문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욕실 락스 청소에 주방 싱크대 청소, 집안 거울까지 구석구석 윤이 나게 닦았다.

'누가 보면 시어머니 오시는 줄 알겠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쓸고, 닦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디데이 당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청소기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화장실 점검도 마쳤다.


드디어 친구들이 도착했다. 기대감보다 긴장감이 더 컸다. 다행히 집에 들어선 그들의 첫마디는 '어떻게 이렇게 정리를 잘해놓았냐. 집이 정말 깔끔하다. 신혼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며 스르르 긴장이 풀렸다.


손님 초대 일정이 잡히면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문득 나의 이 타인에게서 오는 평가, 인정에 대한 집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보다 문득 한 장면에 멈춰 섰다.


어린 시절, 가난과 가까웠던 우리 집은 바퀴벌레와 쥐, 길고 딱딱한 벌레 등 이름 모를 벌레를 종류별로 볼 수 있었다.

이 좁은 집에서 이 많은 벌레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자기 전, 불을 끄고 책상 밑, 장롱 밑의 좁은 틈을 주시하며 벌레가 나오지 않는지 끝까지 확인하다가 잠들었다.

매일 '오늘은 벌레가 나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며 겁먹은 채 잠에 들었다.

단지 벌레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다.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어느 날.

함께 컴퓨터 오락을 하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천장에서 슬금슬금 기어 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와 같으면 곧장 비명과 함께 '엄마!'를 외친 후, 다른 방으로 피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친구가 집에 와있고, 친구에게 '바퀴벌레 있는 집'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침착하게 친구와 게임을 이어가며, 바퀴벌레의 위치를 눈으로 따라가며 확인했다.

'제발 친구가 바퀴벌레를 보지 않았으면, 우리 앞을 피해 갔으면.'


그 바퀴벌레는 마치 우리 집의 가난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떻게든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나의 간절한 주문을 듣지 못했는지

원망스럽게도 친구의 시선이 향한 모니터 화면까지 침범했다.


비명소리와 함께 친구가 벌떡 일어났다.

친구는 '으악, 바퀴벌레!'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잠시 당황하여 친구의 눈을 가려주어야 할지 함께 다른 방으로 이동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 이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어린 시절 '가난'이라는 카테고리에는

이 사건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일에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다.

오늘처럼 친구를 집에 초대한 날은 특히 그렇다.

타인의 평가가 과거의 그 사건을 잊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신혼집 바닥을 쓸고, 닦을 때면 잊고 있던 무의식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어린 시절 변기에 앉아 곰팡이 핀 욕실 바닥을 무기력하게 응시하던 일.

먼지가 더께로 덮인 아빠의 낡은 라디오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돌렸던 일.

냉장고 틈에 가득 낀 검은 때를 발견하고 모른 척

문을 닫았던 일.


문득 그 일들이 떠오를 때면 더 힘주어 욕실의 곰팡이를 닦아내고,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여러 차례 닦아내는 것이다.


아직 그 낡은 라디오 위의 텁텁한 먼지가 걷히지 않은 것처럼.

욕실의 나프탈렌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내게 스민 것처럼 느껴질 때면, 성큼성큼 걸어가 주저 없이 창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그리고 새 공기를 집안 곳곳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다 지나갔다.

다 흘러갔다.

다 씻겨졌다.

휘휘.

휘휘.


최근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상태가 '자유함'의 최종 단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혀 모른 채 살았던 그 기억들이 어느 순간 수면 위로 불쑥 올라올 때면 또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기억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겠구나.

더 이상 나쁜 기억은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잘 돌보아주고 사랑해주는 일이 가장 필요하겠구나.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바라는 마음을 조금 덜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겠구나.

이렇게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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