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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둥 May 05. 2023

나는 동물원이 싫어요

<그림책 '마지막 코뿔소'를 읽고>   

https://bit.ly/3AWCnjP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느덧 조카의 어린이날 선물을 챙기는 이모가 되었지만 한때는 나도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였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만은 생생한 어린이날의 기억을 하나 꺼내보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무렵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동물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들과 동물원에 갔다.


  그 동물원에는 덩치가 큰 고릴라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고릴라와 나는 투명한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내부는 어두웠고, 고릴라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때 고릴라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한 아이가 고릴라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은 듯이 있던 고릴라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다가와 창을 깨부실 것처럼 미친듯이 두드리는 게 아닌가. 놀란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에 질린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고릴라는 분을 참지 못해 계속해서 씩씩거리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고릴라가 창을 두드리면서 생긴 미세한 진동이 귓가에 맴돌았다. 고릴라의 일그러진 얼굴과 포효소리...  그곳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어디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동물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였는데 그날 이후부터 뭔가 좀 바뀌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동물원에 방문했지만 뭐랄까...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동물들을 봐서 좋긴 좋은데 예전처럼 활짝 웃지는 못했다. 그날 알게 된 것 같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도 동물원에 가고 싶으니까. 동물들을 보고 싶으니까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알게 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동물원에 가면 갈수록 즐거운 마음보다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을 모두 다 풀어주고 싶어.' 그래서 다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물원이 싫어졌다. 동물원 안 간다고 하면 "동물 안 좋아해?"라고 묻는 사람들. "아니요 동물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그럼 동물원 가는  좋아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원에 가지 않는 게 이상한가? 내가 생각하기에 동물원은 동물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공간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동물을 볼 수 없기에 강제로 동물들을 데려온 것이다. 개체 보호와 종보존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말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에게 바깥세상은 위험하니 삼시세끼 밥도 제공해 줄 거고, 평생 집안에서 살라고 한다면 어떨까?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는군...) 아마 나는 어떻게든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다. 아무리 밖이 위험하고, 생존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한대도 자유롭게 나의 의지대로 살고자 할 것이다. 그건 동물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들은 동물원으로 동물들을 데려오면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들이 설사 동물원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중간에 나가고 싶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물들은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의 소음과 카메라 셔터 세례에 시달려야 한다. 원래 있던 곳과 기후도 생활 방식도 전혀 다른, 좁은 우리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생활. 이 생활을 인간에게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 동물들을 보기 위해 네팔로 떠났다.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고, 16시간을 버스를 타고 바르디아로 향했다. 바르디아는 네팔의 국립공원으로 야생호랑이를 비롯해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터전인 곳이다. 나는 바르디아에서 정글 워킹을 했다. 반나절 동안 가이드와 함께 정글을 돌아다니며 야생동물들을 멀리서 관찰했다. 야생 호랑이는 보지 못했지만 악어와 코끼리 그리고 코뿔소를 만났다. 코뿔소는 망원경을 쓰고 봤지만 엄청난 크기와 포스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자연 속에서 동물들은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그안에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어떤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볼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야생에 사는 동물들은 야생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물 개체를 보호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복원하기 위해 동물원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다. 그림책에서 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지막 코뿔소는 종의 복원을 위해 동물원에서 남은 생을 지냈지만 마지막까지 동물원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동물원에 가고 싶지 않다. 더 나아가 동물원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지 않으면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는 것. 그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은 결국 동물들이다. 동물원이 사라진다면 이미 야생성을 잃은 동물들이 갈 만한 거처가 없어지게 되는 상황 또한 발생한다. 동물원이 있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은 무엇일까? 최소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과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물원에 가는 사람들이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동물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눈으로만 동물을 볼 것. 그리고 음식 또는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동은 제발 삼가했으면 좋겠다. 동물들이 구경과 전시의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동물원이 동물을 위한 공간이 될 때까지 나는 열심히 '동물원이 싫어요!'를 외칠 것이다.











*매주 그림책 스터디를 함께하는 <노들리에> 작가들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같은 책을 읽고 쓴 <#노들리에> 작가님들의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이해의 브런치 (brunch.co.kr)

 암사자의 브런치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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