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온기를 담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용기이며, 기억의 그릇이다.
- 가브리엘 마르셀
공간이 어찌 감정의 용기일 수 있는가
나는 이 말의 의미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은 늘 나와는 조금 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저 누군가의 감성적인 수사일 뿐,
내 마음속 어디에도 놓을 수 없었다.
가끔 자연의 거대한 품 안에서
경외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의 위대함' 정도로만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어릴 적, 제주에 살던 나는
종종 엄마와 함께 숲길을 걸었다.
오름을 넘고, 산을 타고,
엄마와 나 사이를 오가는 바람 속을 걸었다.
풀잎은 서로를 어루만지듯 흔들렸고,
새들은 지금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 노래했다.
내 옷깃이 부딪히며 내는 사락거림,
조금 앞서 걷는 엄마의 발소리와
내 발소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
나는 그 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늘 '끝'을 기다렸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
걸음이 멈춘 후의 일상을 헤아리던 아이.
그 모든 풍경은,
내겐 그저 걷는 길 위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은 나를 감싸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경기도로 이사 온 후,
제주에선 볼 수 없었던 논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드넓고 초록으로 가득한,
그 고요한 평면 위에서
마치 세상의 숨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살아있는 풍경.
그 속에는 늘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만 같았다.
바람은 잠잠한데
풀들은 무언가를 말하듯 잔잔히 일렁이고,
햇빛은 가만히 비추며 그들을 따라오고
하늘은 그 모든 걸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주는 수평적인 시야의 끝에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고
이곳은 초록의 넓고 낮은 땅 위로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점점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단지 푸르다고만 부르기엔
너무 풍요롭게 느껴졌다.
하늘은 파랗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유백색으로 흐렸고,
또 어떤 곳은 은은한 회색빛이 감돌았다.
들판의 초록도 제각기 달랐다.
연두와 녹색, 그리고 노랑이 감도는 초록빛.
그리고 그것들이 가득한 공간에 서 있을 때면
어딘가로부터 '압도'당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온.
이건, 정적에 잠식당하는 감각이었다.
내 예민한 결이 그 공간의 고요와 마주하며,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그곳에는 말이 없었고, 필요하지 않았다.
공간은 그 자체로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공간의 기류에 반응하고
그 감도에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공간이 주는,
감정의 용기인 것일까?
어느 날, 동료 선생님들과 한 카페를 찾았다.
입구부터 울창한 숲의 풍경이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평소 "감성적이고 싶다"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매우 이성적인 성향의 선생님마저
그 장면 앞에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고 하니
공간이란,
이렇게도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걸까.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자연, 커피, 책, 그리고 빵.
카페에 갈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이블과 의자마저,
마치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에 들었다.
마주 앉은 선생님들의 뒤로,
아치형 창을 통과해 들어오던 햇살마저
사랑스럽던 날.
이보다 더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사람들은 보통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지 모른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반대의 경험을 한다.
내가 갈망하던 평온함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시간은 나를 깊이 감싸 안으며
아주 천천히 흘렀다.
마치 나의 속도를 배려하듯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발을 맞추는 듯이.
예민하다는 말로 가볍게 치부되기엔
나의 감각은 꽤나 섬세하다.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의 결을 감지하고,
작은 떨림을 오래 들여다보는 그런 예민함.
그 섬세한 감각으로 바라본 이 공간은
잠시라도 나에게 평온을 허락해 준,
감정의 그릇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고요히 담겼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 처칠 (Winston Churchill)
나는 나를 닮은 공간을 찾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 커피 한 잔의 온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공간은
나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알아갔다.
예민함이라는 나의 결, 섬세함이라는 나의 무기,
그리고 마음의 안식을 바라는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나를 다시 살게 하고,
나 또한 그 공간을 통해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온전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