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마음의 자리
나는 틈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서서 바라본 세상은 넓고 충만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하다. 그곳에서 마주한 세상은 숨겨진 무늬를 드러내고, 그 무늬 속에서 내 마음에는 언제나 모순이 깃든다.
때때로 나는 문턱에 선 사람 같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웃음과 대화가 흐르고, 문 밖에는 고요와 바람이 있다. 안쪽의 온기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숨이 막히는 기분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자주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까'와 '어디서 멈춰야 할까' 사이에서 발을 동동 거린다. 어떤 날은 내 이름이 부드럽게 불리고, 어떤 날은 그 이름이 벽 너머로 흘려보내진다. 그럴 때면 세상은 나만 들을 수 있는 미세한 잡음을 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서늘해진다. 그 감각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걸리는 거미줄 한 올처럼 나를 오래 붙든다.
나는 내 안의 모순과 자주 마주한다. 속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안에서 숨이 막힌다고 느끼고,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의 기준을 맞추는 건 불편하다. 그런데 이런 모순은 나만의 것일까.
웃으며 안부를 묻던 사람이 돌아서서 비난을 흘리고, 정의를 속삭이던 목소리가 누구보다 빠르게 정의를 내팽개치는 것을 본다. 어쩌면 우리는 모순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걸까.
한 공간에 머물면서도 서로 다른 빛을 받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진 눈금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상을 보는 시선의 기준은 무엇일까.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옳음과 그름은 매번 자리를 바꾼다. 내 감정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작아지고, 그 감정을 옹호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조금 커진다. 결국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 있을 뿐이라면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시선을 조금 더 인정해 줘도 되는 걸까. 그것은 이기심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식일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흔든다. 그 잎사귀는 가볍게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거세게 휘날리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바람이 잎을 몰아세우는 듯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잎이 바람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렇게 바람과 나뭇잎은 서로 어우러져 한 몸처럼 춤추지만 그 사이에 분명한 경계는 없다. 마치 이기심과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식처럼 때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스며들어 있다. 어떤 이는 잎사귀의 움직임을 거친 바람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생명을 잇는 숨결이라 부른다. 결국, 그것은 바라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순 역시 그렇다. 그것은 두 얼굴을 가진 빛과 같다. 때로는 처세술이 되어 우리를 지키고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로 다듬어져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서로 상반된 음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모순은 때로 우리 삶에 균형과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나는 다짐한다. 내 시선을 지키되 그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가두지 않겠다고. 나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에도 숨 쉴 틈을 주겠다고. 세상이 내 기준 안으로 들어오길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투명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어쩌면 그렇게 서로의 틈을 존중할 때, 모순은 여전히 우리 안에 머물더라도 그것이 상처가 아닌 결이 되어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묶어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때론 흔들려도, 그 모든 모습이 어우러져 조금 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